▲홍성학(충북보건과학대학교)교수. 그는 지난해 제9대교수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돼 올해부터 직을 수행하고 있다.(사진 육성준 기자)
충북인뉴스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인권단체 직함을 그리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까?"그는 길게 답하지 않았다.
"덴마크에 당뇨병 치료제로 유명한 '노보노르디스크'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의 경영이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회사의 경영이념은 바로 '세계인권선언'입니다."전국교수노동조합(이하 교수노조) 제9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홍성학(56·충북보건과학대)교수의 삶은 두 단어로 압축된다. 그 단어는 바로 '해직'과 '인권'.
절망 끝에 발견한 희망이랄까? '해직'이라는 고통으로 굴곡진 삶과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인 '인권'이라는 단어는 상반되면서도 묘하게 조화된다.
홍 교수는 충청북도인권위원회 위원장이다. 충북참여연대 사회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청주노동인권센터(대표 김인국 신부) 운영위원도 맡고 있다.
2000년 중반 홍 교수의 삶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2006년 3월 3일. 그 날은 새로운 학기가 개강하는 날이기도 했고 입학식이 열리던 날이었다. 새로운 입학생이 들어오고 교정은 새 교과서를 든 학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이날 홍 교수 만큼은 활기차지 못했다. 그는 학생들과 첫 인사를 해야 할 그날 학교로부터 면직통보를 받았다. 면직이유는 폐과에 의한 면직.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홍 교수는 소송을 통해 2007년 5월 학교에 복직했지만 곧바로 해직됐다. 그는 이날 학교로부터 서류봉투 하나를 받았다. 서류봉투 안에는 복직통지서와 면직통지서가 함께 있었다. 복직과 동시에 해직. '형용모순'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또 다시 긴 소송이 시작됐다. 1차 소송과 마찬가지로 2차 소송에서도 법원은 부당한 해직이라고 판결했다. 2008년 2월 다시 복직했다. 하지만 학교는 2월 말경에 다시 해직통보를 했다. 지난번처럼 같은 날 복직과 해직을 반복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긴 싸움은 2010년이 돼서야 끝났다. 세 번째 복직도 법률의 힘이었다. 법원의 복직 판결로 2010년 5월 31일 복직했다.
교수사회 "비겁하다"홍 교수가 교수노조에 가입한 것은 2005년.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교수노조의 평범한 조합원에 불과했다. 그리고 1년 뒤 학교로부터 해직당한 그는 교수노조 안에 '피해교수 공대위'라는 내부모임을 만든다. 피해교수공대위에는 학교로부터 부당한 징계를 당하거나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들이 모였다.
홍 교수의 '긍정' 바이러스가 작동했다. 그는 '피해교수 공대위'란 명칭을 '교권수호교수모임'으로 변경했다. '피해'라는 부정적인 어감을 긍정적인 느낌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긍정의 힘을 믿는 홍 교수지만 대학사회에 대해서는 날이 서 있었다. 그는 현재의 교수사회에 대해 '비겁하다'며 날을 세웠다.
홍 교수는 "강의실에서는 좋은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강의실에서 나오면 (교수들이) 눈치를 많이 본다. 사회를 끌어가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당근정책에 교수사회가 끌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잘못된 정책이란 걸 알면서도 휩쓸려 간다. 특히 교육부 정책이나 대학정책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지원을 받기 위해 침묵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박근혜 정권 하에서 부역자 역할을 하는 교수도 있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 사회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민주화와 더불어 교수노조가 제대로 서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교수사회가 사회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대학 민주화, 학내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화가 이루어지려면 민주적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법외노조인 교수노조가 법으로 보장되고 교수협의회의 설립과 권한이 법적 제도적으로 명문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