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후 몸조리는 다음 임신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상처받은 몸과 마음은 언제 치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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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을 경험한 여성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적은 '성공담'의 서사는 일관적이었다.
"계류유산 한 번(에서 두 번 이상) 겪고 난 뒤 한약 먹고 몸조리 잘 하니 몇 달 뒤(에서 몇년 후) 아기천사가 찾아왔어요."하지만 '유산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는다→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거나 쉬고 몸조리에 전념한다→한약을 몇 재 지어먹으며 건강관리에 힘쓴다→아이가 생긴다'는 서사 그 어디에도 '고통을 받고 치유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유산 후 다시 아이를 가져 출산하게 된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그간의 과정에서 느꼈을 외로움, 부담감, 고독을 공감하고 싶었는데 그 어느 곳에도 언어화되어 있지 않았다. 왜 그런 걸까?
사실, 유산 후 몸조리는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보다는 다음 임신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 점철된다. 아마도 유산이 되자마자 시댁이나 친정에서 지어다주는 한약이 은연중, 몸의 회복보다 '다음 임신 준비'에 방점이 찍힌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유산이라는 고통 자체에 집중할 마음의 여유는 사라지게 될 터다. 마치 유산이 '출산'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시작단계의 과정인 것처럼.
어느새 나 역시 내 몸을 출산을 위한 도구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임신 실패가 '인생 실패'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기에 다시 임신해서 안전하게 출산까지 할 수만 있다면 몸이 상하더라도 회복 중인 당장이라도 아이를 가지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몇 달째 산부인과를 다니며 임신을 준비하는 친구가 임신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취업이 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취업준비생'의 심리 상태와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럼 (유산한) 나는 일하다가 두 달 만에 해고당한 거냐"며 우스갯소리를 던졌는데 정확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은 결국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임신이 되지 않거나 유산되는 것은 취업을 하지 못해 자책하는 취준생처럼 여성에게 자책감을 유발한다. 내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뭘 잘못 먹어서인지, 내가 뭘 챙겨먹지 않아서인지, 스스로를 검열하고 긴장하게 된다.
따라서 유산 이후 나는 줄곧, '몸 관리를 잘해서 빠른 시일 내에 임신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다 그 말을 들은 한 친구가 '임신 준비는 천천히 하고 우선 네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것'을 권했는데, 충격이었다. 그 말이야말로 내가 가장 듣고 싶은 위로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갖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더 중요해.' 이 한 마디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이야기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이성복 시인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유산한 경험을 밝히는 것이 왠지 부끄럽고 쪽팔린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글을 쓰는 이유는 나와 같은 경험으로 고통받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서이다. 누군가 나처럼 이렇게 고통 받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처럼 눈이 아플 정도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를 찾아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진 않을까. 간절하게.
수술 후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를 갖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임신관련 정보를 검색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유산을 경험한 많은 여성들이 유산이라는 고통 그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오로지 다음 임신을 위한 준비에 온 에너지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에 집중하고 자신을 더 아껴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유산이라는 과정이 나에게 남긴 것이 '실패와 상처' 뿐, 아무 것도 없으면 너무나도 슬플 것 같기 때문이다. 유산은 물론 몸과 마음이 상하고, 다신 반복하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 경험 역시 내 몸에서 벌어진 것이기에 내 삶의 일부이다. 이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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