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의 기원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Wikimedia Commons
우리는 상징과 이름의 힘을 가끔씩 간과한다. 상징과 이름은 사람들의 사고를 쉽게 지배한다. 괜히 20세기 철학의 중심사고가 언어철학이 아니었던 것이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 나아가 문화를 얼마나 관통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가장 주된 연구항목이었다. 버트런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같은 철학계의 거성이 등장한 것도 이런 맞물림에 의한 것이다. 어렵게 철학으로 갈 것도 없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만 읽어봐도 신(新)어로 사람들의 사고를 통제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몇 해 전 인기 아이돌그룹의 멤버가 입은 무대의상에 '욱일승천기'가 그려져 있어서 크게 논란이 일었다. 실제로 욱일승천기라는 표현은 우리나라에서만 쓰이고 정식 용어는 '욱일기'가 맞다. 욱일기는 과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일본군의 상징으로 쓰였고 현재도 자위대의 깃발로 쓰이고 있다.
유럽을 위시한 서구사회에서 과거 히틀러가 수반이었던 나치(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 문양은 이유불문하고 금기시 된다. 그 문양을 사용한다는 것은 평화를 저해하는 메시지를 옹호한다는 의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아시아권에서도 일제의 욱일기 디자인 역시 강력하게 금기가 되어야함이 옳다.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Hakenkreuz)'는 '卍(만)'자의 변용이다. 卍(만)은 아리아인들에게서 기원을 찾는 전통문양인데 이는 인도로 퍼지며 불교와 힌두교 등 다양한 종파에서 사용된다. 종교와 지역에 따라 의미는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지만 기본적으로 소용돌이치는 모양이 형상화된 표의문자다. 히틀러는 이 글자를 회전시켜서 나치의 상징물 하켄크로이츠로 사용했다. 참고로 하켄크로이츠는 고리(hook)를 뜻하는 하켄(haken)과 십자가(cross) 크로이츠(kreuz)의 합성어다.
히틀러는 나치를 상징하는 깃발을 휘두르며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유대인을 무려 400만이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 전범기의 상징인 나치 문양은 결국 폭력과 전쟁의 표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거 알고 있는가. 애초에 동양 종교권에서는 卍(만)자가 '평화'와 '행복'을 상징한다. 그래서 심심찮게 우리가 사찰이나 부적에서 卍(만)자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평화와 행복의 상징으로 400만에게 학살을 자행하는 과정을 납득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잘못된 상징은 우리의 사고를 바꿔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