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유갓파(豊乳河童)상
유혜준
구치노츠 항에서 간단하게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걷기 시작한다. 하늘은 맑고, 햇빛은 따사롭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한 기운을 품었다. 아직은 겨울이 바닷바람에서 묻어난다. 그래도 좋다. 날씨가 좋아서 좋았다. 일단 걷기로 마음을 먹으면 날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지만, 날씨가 좋으면 덤을 듬뿍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더 좋다. 이날이 그랬다.
붉은 동백이, 홍매화가 환하게 웃으면서 속삭인다. 봄은 이미 와 있어. 그러니 서두르지 마. 지금을 신나게 즐겨.
야쿠모 신사를 지났고, 풍유갓파(豊乳河童)상 앞에 도착했다. 갓파상은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요괴인데 가슴이 유난히 동그랗다. 그 가슴을 만지면 엄마젖이 풍부해진다는 속설이 있다나. 단, 만질 때 제대로 잘 만져야 한단다. 부드럽게 받쳐 드는 것처럼 만져야 한다, 소중한 것을 다루는 것처럼. 요즘은 엄마젖이 넉넉하지 않아도 분유가 얼마든지 있으니 괜찮지만, 옛날에는 엄마젖이 풍부해야 아기가 배를 곯지 않았다.
올레 이정표를 따라 숲길로 접어들었다가 고개를 드니 갑자기 눈앞이 훤해진다. 하얀 솜을 얇게 펴서 늘어놓은 것 같은 하늘이 펼쳐진다. 그 하늘 아래 인공저수지인 노다 제방이 있고, 그 뒤에 노로시야마가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밭과 밭 사이로 이어진다. 양상추밭, 양파밭 그리고 감자밭이다. 이 풍경은 멀리서 보는 게 더 멋있다. 밭에는 사람의 손길이 잔뜩 묻어 있다. 이랑을 갈고, 비닐을 씌우고, 씨를 뿌리는 농부의 손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