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고 신입생들이 2일 오전 입학식이 열린 학교 강당에서 국정교과서 철회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정훈
이번 국정교과서 사태에서 단연 군계일학(群鷄一鶴)은 학생들이다. 김천고도 결정적으로 국정교과서를 포기하게 만든 것은 강당에 모여 국정교과서와 학교의 처신을 비판하는 학생들의 집단행동이다. 그리고 그들이 붙인 학교 담장의 대자보이다.
1시간에 이르는 대통령 탄핵 비난 교장의 일장 연설을 비판하고 나선 것도 디지텍고의 학생들이었다. 구미 오상고도 학교가 국정교과서를 포기하게 만든 제일 큰 힘은 학생들의 집단적 반발이다. 지금 연구학교로 유일하게 남은 문명고 역시 가장 적극적으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행동에 나선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학생들이다.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학교측의 방해 공작에도 수십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피켓을 만들어와서 운동장에서 시위를 하고, 일부 학생은 입학을 포기하면서까지 국정교과서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하고 있다.
디지텍고도, 김천고도, 구미 오상고도, 경북항공고도, 그리고 문명고도 모두 학생들이 교사와 어른들이 배워야할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는 18세 투표권 문제에 있어서, 왜 그들에게 투표권을 하루라도 더 빨리 주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국정교과서 사태는 그 학생들이 내일의 희망이 아니라 당장의 모범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교육학자 존 듀이의 '교육은 미래의 생활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로 삶의 첫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과정'이라는 말이 지금 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인 듯하다. 이것이 진짜 살아있는 교육이 아닐까? 교사와 어른들이 부끄러워해야할 상황이다.
국정교과서가 보여주는 참담한 학교민주주의 수준문명고를 비롯한 여러 학교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교과서 사태는 우리나라 학교민주주의의 참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단 한 시간의 수업도 하지 않는 이사장과 교장은 교과서 선정에 있어서까지도 막강한 권한을 갖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를 무시하고 있다. 반면에 교사는 자신이 수업할 교과서조차도 마음대로 채택하거나 거부하지 못한다. 학생은 교과서에 대한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 못하다.
교과서 선정을 위한 중간 단계인 학교운영위원회 역시 민주주의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먼저, 사립학교의 경우 학운위의 위상이 자문기구라는 점이 근본적 한계이다. 그러니까, 학운위에서 의결한 사항에 대해 학교장이나 이사장이 거부해 버리면 그만이다. 어떤 법적 강제력도 없다.
그러니 부결된 안건을 학교장이 학부모위원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하여 다시 표결에 붙이는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학운위 소집이 되지 않자 일단 연구학교 신청부터 하고 추후에 학교운영위를 열겠다는 학교도 생긴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 선정 문제를 다룬 디지텍고 학운위 회의는 교장과 교감의 제안 설명 외에는 단 한 명의 토론이나 질문도 없이 무사통과되었다.
근본적으로는 교사위원의 구성부터가 대표성이 전혀 없다. 대부분의 사립학교 학운위의 교원위원은 교사들이 직선으로 뽑는 것이 아니다. 후보들을 추천하는 권한만 교사들에게 있고 최종적인 위원은 학교장이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지명한다. 투표에서 1등을 한 후보가 탈락하고, 꼴찌를 한 후보도 학교장이 낙점하면 교원위원이 되는 것이다. 이러고도 그들은 합법이라고, 민주주의라고 한다. 이런 학운위가 교사들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리가 없다.
문명고를 비롯하여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려는 학교들은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특정 교원단체 또는 외부 단체에 선동되어서 집회를 하고 반대를 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진실과 거리가 멀다.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려는 학교들이 말하는 교원단체는 전교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들 학교에 근무하는 전교조 교사는 거의 없다. 0명에서, 가장 많은 학교가 3명이다.
확인 결과 전교조 조합원인 교사가 서울디지텍고 2명, 김천고 3명, 문명고 3명이고, 경북항공고와 오상고는 0명, 즉 한 명도 없다. 이에 반해 이 학교들에 근무하는 교원 중 보수 교원단체인 교원단체총연합(교총) 소속 교사는 대부분 20명이 넘는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전교조의 영향을 받아서 국정교과서를 반대한다는 말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드러나는 장면이다.
있지도 않은 전교조 교사가, 기껏해야 3명의 교사가 어떻게 수백 수천명의 학생과 학부모를 선동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럼 훨씬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교장과 교감, 수십 명의 교총 회원 교사들은 뭘 하고 있었냐는 질문에 할 대답이 없다.
국정교과서와 민주주의는 모순하나의 사관(史觀)을 강요하는 국정교과서는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적 개념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이라는 나라들,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국정이 아닌 검인정 또는 자유발행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으며, 과거 권위주의 독재국가들에서나 국정교과서를 찾아볼 수 있는 국제적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들, 수업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입장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교장과 이사장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는 현재의 국정교과서의 운명은 우리 학교민주주의가 얼마나 참담한 수준에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의 요람이어야 할 학교가 민주주의의 무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다.
실질적 대선 국면이다. 각 후보들과 정당들은 각종 교육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국정교과서 사태가 보여주듯 이번 교육공약의 핵심 중 하나는 학교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국정교과서가 과연 21세기 민주주의에 맞는 제도인가, 교육의 주권을 이사장-교장이 가져야하는지 교사-학생이 가져야 하는지 근본적 고민과 더불어 학교민주화, 특히 사립학교 민주화를 위해서 사립학교법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대책이 필요함을 국정교과서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국정교과서 사태를 통하여 우리가 얻어야 할 진짜 교훈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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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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