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를 주제로 열린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인권 감수성이 뛰어난 정치인이다. 부산변호사협회 인권 위원장까지 지내며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어온 그의 행보는 보편적 인권을 옹호하는 일관된 궤적을 그리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에 항거하다가 대학에서 제적되고 두 차례 옥살이를 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대형 로펌에서 일자리 제의가 있었지만, 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인권 변호사로 활약했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의 폭력도, 돈의 유혹도 인권을 향한 그의 신념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가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성별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문 전 대표가 지적했듯, 한국은 OECD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심각하다. 단적인 사례가 남녀 임금 격차다. OECD 평균이 15.3%인데 반해, 한국은 그 두 배가 넘는 36.3%다. 남성이 백 원을 벌 때, 여성은 64원 가량을 번다는 뜻이다. OECD에서 조사를 시작한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은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2위인 일본과도 격차가 10%포인트나 나서 심각성이 더하다.
문 전 대표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을 낮추는 대안들을 제시했다.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정착 △연장근로 금지 △아빠 휴직 보너스제, 출산휴가 유급휴일 연장 등 육아휴직제도 활성화 △국공립어린이집 이용 아동 비율 40% 확대 등의 공약이 그것이다. '노동 중독 사회'에서 '돌봄 중심 사회'로 옮겨가겠다는 의견을 확실히 밝힌 셈이다. 돌봄 노동에 매몰돼 사회 진출 기회를 박탈당하던 여성들로서는 더없이 좋은 일이다. 게다가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을 통한 여성고용 확대, 성폭력 가해자 엄중 처벌, 공교육에 성평등 교육 포함 등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바꿀 정책들이 줄을 이었다.
페미니스트 인권 변호사의 변심그런데 이토록 인권 친화적인 문 전 대표는 유독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지난 13일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를 만나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도 "우려할 것 없다"며 반대하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문 전 대표는 "성소수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차별을 적극적으로 없애기 위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평생 인권 운동에 헌신해온 그가 성소수자들이 차별받는 현실에 눈감겠다고 밝힌 이유는 뭘까?
"나중에, 나중에." 지난 16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포럼에서 문 전 대표의 기조연설 도중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가 난입해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권 운동가가 흥분한 채 이야기를 멈추지 않자 포럼 장소에 있던 문 전 대표 지지자들은 "나중에"라는 구호를 합창하며 '난동꾼'의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문 전 대표도 '나중에 발언 기회를 드리겠다'고 말하며 사건은 마무리됐고, 실제로 인권 운동가들은 이날 포럼에서 발언 기회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