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공양터 스님은 소나무 아래에 앉아 결가부좌를 한 후 한치의 미동도 없이 독경을 하면서 소신공양에 들어갔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권미강
나는 그때서야 스님과 오랜 인연임에도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한 내 불찰에 대해 가슴을 쳤다. 구도의 길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걸어오신 스님이 그저 속세를 떠난 해탈이 아닌, 오욕칠정으로 얼룩진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민중들과 함께 가는 것이 승려로서 할 일임을 마음으로 정하신 것이다.
소신공양을 하셨다는 소식에 밤늦게 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간 선배 언니로부터 당시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는데, 석유를 마시고 몸에 불을 붙였기 때문에 장기가 타버려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스님은 분명 작정을 하신 거였다. 4대강 사업으로 파헤쳐진 강에서 뭇 생명들이 죽어갈 때 낙동강 둑에서 소신공양하신 문수 스님에 대해서 페이스북을 통해 언급하시더니 결국 같은 길로 가신 것이다.
스님이 온몸을 불사르며 외치던 '박근혜 퇴진, 적폐청산'이 법이라는 민주적인 절차에 묶여 초초하게 헌재 판결을 기다리는 지난 토요일,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정원 스님 소신공양 49재가 열렸다. 양혜경 선생의 넋전춤으로 시작된 추모공연과 불교의식으로 열린 49제에는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을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스님을 추모했다.
그리고 한쪽에는 스님의 글이 담긴 책이 쌓여있었다. <일체 민중이 행복한 그 날까지>(도서출판 말)라는 제목의 책은 그간 정원 비구스님이 남기신 글을 모아 만든 추모집이었다. 소신공양 전에 썼던 유언과 일기, 유작 시 등이 실려 있다. 발간사는 스님의 친동생인 서상원 교수가 썼는데 소신공양 소식을 듣고 느꼈던 참담함을 시작으로 정원 스님의 행적을 써내려가며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스님이 사셨는지 알기 쉽게 정리한 글이었다.
책을 읽어보니 스님은 갑작스레 소신공양을 결심한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승려로서 세상의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고뇌했고, 그것은 곧 속세의 부조리를 뿌리 뽑고 민중들과 함께 대항해서 올바른 대중의 세계로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셨던 듯싶다.
소신공양 직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가사 형식의 글인 '이보시오 촛불님네'를 보면 그 마음이 그대로 녹여져 있다. '소신공양으로 매국노 집단이 일어나는 기회를 끊고 촛불 시민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다'라며 왜 극한의 고통을 참고 몸에 불을 댕겼는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불교인으로서 '불교는 민중을 진정으로 사랑하라! 민중, 중생을 사랑하지 않는 불교는 가짜다. 수행자는 민중 속에서 붓다를 실현하라!'는 일침의 글도 남겨져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생명을 빼앗긴 단원고 학생들과 승객들 만나면 구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말해주겠노라'며 세월호 희생자를 만나서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보여준 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