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버지를 잇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장교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그를 '파파보이' 의지가 나약한 한심한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김훈 중위의 동기생은 말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육사 출신 장교였다고 말이다.
김척
노여수 박사는 김훈 중위가 만약 방아쇠를 당겼다면 응당 그의 오른 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되어야 하는데 아무런 흔적이 없다며 이는 김훈 중위가 자살하지 않은 결정적 증거라고 지적했다. 또한 총상 입구와 머리 속에 생긴 총알 진행 방향이 권총 자살시 발생하는 특성과 일치하지 않으며 사용된 권총에 지문이 없어 누군가 고의적 지웠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이어진 폭로가 그 반응에 폭발력을 더했다. 의문사한 김훈 중위 소속 소대의 부소대장이 비밀리에 북한군 초소를 왕래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언론은 이 사실을 전하며 이전까지 의문사로 언급되어 왔던 김훈 중위의 죽음을 '타살'에 초점 맞춘 뒤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그러자 나선 분이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은 국방부에 건군 역사상 최초로 군 의문사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의 구성을 지시했다. 2008년 12월의 일이었다.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렸던 일이었나? 이제는 마침내 됐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달랐다. 대통령의 지시로 특조단이 출범했지만 그 조사를 대통령이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이 특조단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참여했던 나는, 당시 내가 직접 목도한 사실 앞에 지금도 분개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대통령도 속였고, 국민도 속였으며 또 유족도 속였다.
처음에는 김훈 중위의 억울한 죽음에 공감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진실 대신 협상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나 둘 약속을 깨기 시작했다. 사건 현장에서의 화약흔 조사가 대표적이다. 처음에 이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던 특조단은, 이후 자신들끼리만 몰래 실험을 한 후 그 결과마저 우리에게 속였다.
이런 사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특조단은 다시 한번 김훈 중위를 자살로 '만들었다'. 이같은 특조단의 비열한 거짓과 왜곡은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용서할 수 없다. 그런데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다. 바로 '유족에 대한 약점 찾기'였다.
사건의 진실 대신 특조단이 열심히 찾은 그것은...이 사실을 알게된 것은 특조단의 조사가 거의 마무리되어가던 시점이었다. 묘한 소문이 우리 귀에 들려왔다. 특조단이 김훈 중위의 사망 조사 외에 또다른 사실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피해자의 아버지였던 김척 장군과 그 유족을 상대로 한 비리 등 약점 찾기 였다.
아버지가 장군이었으니 아들인 김훈 중위에게 뭔가 특혜를 준 것이 있는지, 그리고 36년간의 군 복무 기간 중 비위 사실이 있는지, 또는 뭔가 자신들이 잡고 흔들 만한 어떤 사실이 있는지 찾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이건 정말 너무 야만적인 일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야만적이었다. 1999년 4월 14일, 특조단은 자신들만의 일방적인 수사로 낸 결론을 토대로 김훈 중위가 자살이라고 재차 발표했다. 그러면서 특조단장은 국회에서 '김척 장군의 가정은 자살할 수밖에 없는 가정'이라는 말을 하여 듣고 있던 국회의원들이 "지나친 명예훼손"이라며 격분하기도 했다.
한편 이처럼 군이 찾으려 했던 아버지의 비위는 무엇이었을까? 정말 뭐라도 나왔을까? 깨끗했다. 36년간 군인으로 살아오면서 누구처럼 군 연병장에 폐기물을 묻고 돈을 받았다면, 또 누구처럼 인사 청탁을 받고 금괴라도 받은 사실이 있다면 절대 그냥 둘 그들이 아니었다. 고작 찾아 낸 것이 차로 아들을 부대에 한 번 데려다 준 것을 두고 "마마보이로 아들을 키웠다"며 증거로 제시한 것이 전부였다.
도대체 무엇을 두고 '자살할 수밖에 없는 가정'이라는 극언을 했는지 지금도 납득할 수 없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모욕이, 그러나 19주기가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노여수 박사가 밝혀낸 과학적인 진실도, 그리고 국민권익위원회와 대법원, 그리고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김훈 중위 자살'을 오직 국방부만 유일하게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언컨대 주장한다. 김훈 중위는 결코 자살하지 않았다. '만약 자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분명한 타살 사건을 자살로 우기는 '국방부의 양심'이다. 언제까지 이 분명한 사실을 국방부만 외면할 것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저 바보같은 주장을 국방부는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이제 내년이면 김훈 중위 사망 20주기를 맞이한다. 부디 그전에 이 논란이 끝나야 한다. 김훈 중위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나는 촉구한다. 영원한 청년 장교, 김훈 중위의 19주기를 추모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9
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공유하기
'판문점 의문사' 김훈 중위와 '아버지의 전쟁' 19년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