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산하 보안수사2대. 배용한과 박무식은 여기서 각각 조사를 받았다.
박무식
첫딸의 결혼은 앞두고 있었던 배용한은 조사를 받으면서도 딸아이의 결혼식 생각밖에 없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돌아와 이듬해 봄 그는 무사히 이웃의 축복 속에 첫딸을 여읠 수 있었고 그해 여름에 자신의 회갑을 맞이했다.
'어둡고 긴 터널'로 들어가다2012년 2월에 박무식에게는 구속영장이 재청구되었지만 '범죄사실이 소명되지 않고 증거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그 해(2012년) 6월에 두 사람은 서울 중앙지검에서 다시 조사를 받았다. 압수수색으로부터 꼭 1년 만이었다.
다시 한 해가 흘렀다. 끝난 것도 이어지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은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그것도 '끝나야 끝나는 것'이었다. 2013년 6월,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은 두 사람을 각각 불구속기소 했다. 압수수색으로부터는 2년, 검찰 조사가 끝나고 다시 1년이 지나서였다.
2013년 박무식의 첫 공판에서 재판장은 '거의 2년이 다 된 시점에 기소한 이유'를 물었고 검사는 '본인의 권한'이라고만 답변하였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국가보안법 사범을 2년 동안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가 '뜬금없이 기소'한 이유를 그는 아직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재판장은 2014년 11월부터 결심을 하려 했지만, 기일은 계속 바뀌었고 검찰은 변론이 종결된 뒤에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검찰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2015년 6월 30일, 열두 번의 공판 끝에 1심이 끝났다. 재판부는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적 목적이 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각각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검찰은 이내 항소했고 두 사람은 다시 2심을 기다려야 했다.
피고인이 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일은 단순한 시간의 집적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송달되는 공판기일 통지서와 기일변경 명령 등 등기우편으로 점철된, 당사자만 아니라 가족들마저 일상적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피고인들은 숱한 불면의 시간과 위산과다로 인한 속쓰림을 겪어야 했다.
대구지법에서 2심 첫 공판이 열린 것은 다시 1년 후인 2016년 4월이었다. 10월, 네 번째 공판부터 검사가 두 사람 더 붙었고, 그중 한 사람은 대검 공안부에서 파견된 이였다. 이들은 공소장을 변경했고, 집요하게 새로운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결심 이후에도 검찰은 의견서 3권, 참고 자료 2권을 내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1월 25일의 결심에서 변호인 이광철 변호사는 정연한 논리로 열정적인 변론을 펼쳤고 피고인들도 지금까지 성실하게 재판에 임해 온 소회를 밝혔다. 그것은 6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반 징역살이'를 해온 피고인답지 않게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