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희의 첫 시집 <야매 미장원에서>.
노마드북스
'야매'란 촌스럽고 어리석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단어다. 시집의 제목으로선 세련되지 못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지난한 인간의 세상살이에 아프게 뿌리 내린 시들은 세련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싱크대 구석 며칠째 냄새 한 가닥이 흘러나온다고등어 토막인지 살이 뭉그러진 쥐 한 마리인지 알 수 없는악취가 흘러나온다나는 냄새의 근원을 찾아 싱크대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위의 책 중 '냄새의 탄생' 일부.
'아름답고 싱싱한 부패'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삶 어느 부분이 매시간 속도를 달리하며 썩어가고 있다는 엄혹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조연희는 이런 명백한 사실을 자신이 늘 오가는 생활의 현장인 부엌에서 발견해낸다. 그 생활 현장에서의 발견은 이어지는 아래와 같은 진술을 통해 '시적 발견'으로 변이·진화한다.
"그러므로 그대여 / 당신 몸에서 냄새가 난다면 / 당신은 누군가에게 잊어지는 거라고 /버림받는 중이라고..."기실 시인이란 세속을 떠도는 웃음과 행복이란 명(明)보다는 눈물과 불우가 거듭되는 암(暗)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멈춤의 약속 없는 부패의 세상 냄새를 맡은 조연희는 그 세상 속에서 피지 못하는 꽃의 안타까움을 건조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이는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좋은 시인의 태도. '곰팡이꽃'이란 시를 통해서다.
한 번도 꽃 핀 적이 없는 난한 번도 열매 맺은 적이 없는 넌슬픔의 포자가 되어오늘도 무성생식을 꿈꾼다나 혼자 발효하고너 혼자 착생하고...탯줄 끊는 고통 속에서 탄생하는 무수한 물방울들...어떻게 보면 염세적으로 보일 수 있는 조연희의 시들. <야매 미장원에서>를 통해 만나는 작품들 속에선 우울과 허무의 향취가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를 포착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조 시인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시집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아래의 시 마지막 행을 읽어보자.
강은 몸을 틀어 제 생의 굽이를 만들어 보였다한 번씩 몸을 비틀 때마다쉼표 같은 물방울들이 무수히 태어났다저 강은 알고 있을까밤마다 내가 한 줄기 샛강이 되어탯줄 끊듯 허리 꺾는 이유를.- 위의 책 중 '샛강'의 일부. 시인 이산하는 후배 조연희의 첫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그의 눈은 무심한 듯 예리하고 치밀하다"고 말했다. 이 짤막한 문장 안에는 드러내지 않은 수많은 칭찬의 목소리가 담겼음을 나는 안다. "큰 것들보다는 작고 사소한 것들 속에서 생의 허기와 통점을 찾아내는" 후배에게 헌사한 선배의 시적인 단문.
'무수한 물방울'의 탄생을 위해 '밤마다 탯줄 끊듯 허리를 꺾는' 조연희의 뼈아픈 '시적(詩的) 모험'이 그 출발을 알렸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온 봄. 조연희가 그 봄처럼 아프고도 아름다운 시의 미래를 열어가길 기대한다. '야매의 세상'에서 '진짜 삶'을 읽어내는 시인이 돼주기를 바란다.
야매 미장원에서
조연희 지음,
노마드북스, 2016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