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정에서 바라본 임진강[유극량을 위한 변명] 선조가 화석정 아래에서 임진강을 건너 개성으로 간 뒤 도원수 김명원의 관군이 임진강을 지킨다. 며칠 째 강을 건너지 못하던 일본군이 갑자기 막사를 불태우고 후퇴하기 시작한다. (『징비록』은 왜적들이 후퇴하는 척하여 아군을 유인했다고 적는다.) 아군 장수들이 강을 건너 공격하려 했다. 도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이도 많고 전투에도 익숙한 유극량이 나서서 ‘지금은 군사를 움직일 때가 아닙니다.’ 하자 부원수 신할이 그를 죽이려 했다. 유극량이 ‘나는 어려서부터 싸움터에 다녔소.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리오. 나랏일을 그르칠까 보아 말릴 뿐이오.’ 하고는 군사를 이끌고 앞장섰다. 하지만 강을 건너 아군이 적을 뒤쫓았을 때는 이미 매복에 휘말린 상태였다. 유극량은 ‘이곳이 나의 무덤이로구나!’ 하고 탄식하고는 달려드는 적병들을 여럿 죽인 후 마침내 전사했다. 신할도 죽었다.
정만진
"수사는 이미 바꿨다."
왜적의 침입에 맞설 대장 중 한 명인 전라 좌수사 임명을 이토록 허술하게 진행할 만큼 당시 조선 조정은 '엉망'이었다.
엉망진창으로 진행된 임란 직전의 인사 발령새로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에 임명된다. 고위 관료들은 이순신의 전라 좌수사 임명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선조가 2월 13일 '진도 군수 이순신을 전라 좌수사에 제수하라.' 하고 결정을 내리자 사간원은 '(정읍)현감 이순신은 (진도 군수로 발령을 받아) 아직 군수에 부임하지도 않았는데 좌수사에 임명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인재가 모자라는 상황이라 해도 이렇게 지나친 승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순신에게는 다른 벼슬을 주소서' 하고 반대한다.
그런데 선조의 이순신 인정은 각별하다. 아니, 놀랍다. 선조는 '이순신을 지나치게 승진시켰다는 것은 나도 안다'면서 '다만 지금은 일반적인 인사 규칙에 메일 형편이 아니다. 인재가 모자라니 파격적인 승진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사람(이순신)이면 충분히 (좌수사의 임무를) 감당할 것이다. 벼슬의 높고 낮음을 따질 일이 아니다'라며 밀어붙인다.
선조의 이순신 발탁을 두고 '놀랍다'라고 한 것은 <선조실록> 1597년 1월 27일자의 내용 때문이다. 당시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였다. 선조가 전쟁 중에 "나는 (해군 사령관) 이순신의 사람됨을 자세히 모르지만 성품이 지혜가 적은 듯하다"라고 말한다. 놀라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임금이 나라 안의 핵심 대장을, 그것도 전쟁 중에 "나는 그 사람 잘 몰라"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선조 "수군통제사 이순신, 어떤 사람인지 나는 잘 모른다"선조는 다시 이순신이 "경성(한양) 사람인가?" 하고 묻는다. 류성룡이 "그렇습니다. 성종 때 사람 이거의 자손인데, 직책을 감당할 만하다고 여겨 당초에 신이 조산 만호로 천거했었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선조가 또 묻는다.
"글을 잘하는 사람인가?" 류성룡이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성품이 굽히기를 좋아하지 않아 제법 취할 만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느 곳 수령(정읍 현감)으로 있을 때 신이 수사(전라 좌수사)로 천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