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검사무실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이 확정된 후 첫 조사다.
이희훈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보수적이란 감옥의 특성상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서울구치소의 남자 수형 공간은 1동에서 15동까지 모두 15개 사동이 있었습니다. 각 동은 상층, 중층, 하층 등 3개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층이 1층, 중층이 2층, 상층이 3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각 층에는 1번방에서 12번까지 모두 12개의 방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1번방, 2번방, 3번방은 독방이고 4번방부터 12번방까지는 혼거방입니다. 혼거방은 보통 적게는 6명, 많게는 10명까지 생활합니다.
각 층의 독방은 평수가 1평 반 정도되었는데 당시 제가 수감생활할 때 함께 있었던 자들 중에는 횡령 혐의로 구속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과 전 서울시장 염보현이 있었습니다.
학생들과 재야인사들 중에는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고, 지금은 민주당 원내대표인 우상호 의원이 있었고, 당시 재야운동을 하던 이부영 전 의원이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동료, 선후배들이 있었습니다.
염보현 전 시장은 각 층에 속한 독방에 있었는데, 전경환은 그 때 서울구치소의 5동 중층 한 동을 전부 다 썼습니다. 1번방~12번방까지 싹 다 비우고 혼자 쓴 거죠.
그때는 사형수, 무기수, 거물급 비리 관련자들, 시국사범중 주동자급 학생들, 재야인사들, 노동자들이 주로 독방에 들어갔습니다. 주로 집시법이나 국보법으로 들어온 경우죠.
서진룸살롱 살인사건의 주범 김동술을 만나다서울구치소는 주로 미결수들이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사형수와 무기수들은 형이 확정된 기결수이면서 독방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시국사범들은 미결수인 상태에서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지냈다는 점이 다릅니다. 저는 14동 중층 2번방에서 지냈습니다. 보안사범을 상징하는 빨간색 명찰로 수번 107번이었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 때 3번방에는 국보법으로 들어온 인천에서 노동운동하다 오신분이 계셨고, 1번방에는 처가 식구들을 살인한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밑에 하층 1번방에는 당시에 무척 유명했던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의 주범이었던 김동술이 있었습니다.
사형수들은 갇혀있는 몸이라고 하더라도 일반 재소자들이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일반 재소자들이 떠들다가도 사형수들이 "시끄럽다"고 소리를 치면 웬만하면 조용히 해줍니다.
이제 곧 죽을 목숨이라는 것에 대한 동정심이랄까, 안쓰러움이랄까, 자기들보다 뭔가 더 큰 사건을 저지른 재소자에 대한 좀 복잡한 감정으로 사형수를 대하는 것이지요.
하루 24시간 중 30분씩 운동시간이 있는데 혼거방 일반 재소자들은 혼거방 재소자들끼리 운동을 합니다. 그리 넓지 않은 운동장에 1층에 있는 혼거방 재소자들 10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나와서 운동을 하는데, 공간이 넓지 않으니 30분간 걸으며 햇볕 쬐다 들어가는 게 거의 전부입니다.
독방을 쓰는 사형수, 무기수, 시국사범 등은 보통 혼자 운동을 하는데 종종 다른 독방을 쓰는 사람과 함께 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저보다 4살 많은 김동술과 몇 차례 만나서 함께 운동도 하고 얘기도 나누기도 했었죠.
함께 운동할 때 김동술은 목포에서 처음 서울로 올라와서 제 모교(세종대)가 있던 서울 화양리에서 자취하며 지냈던 얘기도 하곤 했습니다. 그는 사형을 선고받은 입장이라, 언제 사형이 집행되어 죽을지 모르는지라 밖의 시국에 늘 신경을 쓰곤 했습니다. 저한테 무슨 새로운 소식이 없나, 만날 때마다 물어보던 것이 기억납니다.
구치소 안에서 책을 나눠보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