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목에 걸린 계엄령 피켓 4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1가 사거리 일대에서 '제11차 박근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 성조기 등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이희훈
2016년 12월 31일, 마치 롤러코스터 같았던 한해의 마지막 촛불집회에 나갔다. 그날은 오랜만에 혼자 일찍 나와, 본격적인 집회 본무대가 시작되기 전 광화문 광장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날 따라 유난히 눈에 띄는 문구들이 보였는데, 바로 '선진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피켓들이었다.
누군가가 들고 있었던 노란색과 연두색 만장에는 아예 "엎어진 김에 일심 선진국 가자"라고 쓰여 있었다. 반대편에는 "박통 매국노들 최고형으로!"라는 문구가 쓰인 커다란 현수막 하나가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었다.
몇 시간 후 시청역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보았다. 동화면세점과 조선호텔 앞 즈음을 기점으로 폴리스라인이 형성되고 군복과 태극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아직 집회를 시작하지도 않은 16차선 도로의 분위기는 다소 산만했고, 군가풍의 노래와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 휑하고 산만한 거리를 소리로 장악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간간이 "애국자 여러분, 이쪽으로 오지마시고 시청 광장 쪽까지 흩어져 계시다가 이따가 모이시기 바랍니다"라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날, 충격적인 피켓을 보았다. "국민의 명령이다! 군대여 일어나라"라고 쓴 '국방색' 피켓과 "국민의 명령이다! 계엄령 선포하라"고 쓴 빨간색 피켓.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이 피켓들을 손에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더 잘 보이라고 머리 위로 들고 다녔다. 탄핵 기각 서명을 받는 가판대 위에도 이 피켓이 가득 쌓여있었다.
피켓 아래에는 '한성주 장군 시사브리핑'이라는 글씨와 함께 괄호 안에 '윤PD'라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또 다른 빨간 피켓 두 종에는 "비상시국이다! 계엄령뿐!", "국민의 명령이다! 계엄령 선포하라"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리고, 무대 옆 구조물 위에는 "JTBC 재벌언론 물러나라"라는 문구의 피켓이 붙어 있었다. "선진국 가자!"라는 촛불집회의 어느 피켓과 "재벌언론 물러나라"라는 태극기 집회의 어느 피켓이 보여주는 아이러니. 어쩌면 이들의 '태극기 집회'에는 우리가 반추해야 할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날 이후, 나는 이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주장하는가 이들의 주장은 이들이 집회에서 부르는 아래의 '태극기' 개사곡에 모두 담겨 있다.
'태극기 든 국민이 일어납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지켜냅니다. 태극기 든 국민이 경고합니다. 억지탄핵 검찰 공모 내란입니다. 태극기 든 국민이 명령합니다. 손석희의 조작 보도 수사하시오. 태극기 든 국민이 앞장섭니다. 촛불선동 종북좌파 몰아냅니다. 태극기 든 국민이 승리합니다. 탄핵기각 국회 해산 쟁취합니다.'
즉, 이 모든 것은 북한의 김정은과 남한 좌익 종북 세력들이 나라를 뒤집기 위한 음모이며JTBC의 손석희는 태블릿 관련 조작 보도로 선동에 앞장섰다. 국민들은 이들의 거짓 선동에 놀아나고 있다. 이것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은 채 국회가 탄핵을 가결시킨 것은 무효이다. 여전히 '북한'과 '종북'은 만능열쇠이다.
60대 이상 참가자 대부분은 인터뷰나 현장 발언에서 북한과 빨갱이에 대한 강한 불안을 드러냈다. 조갑제, 변희재,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 한성주 장군, 허평환 전기무사령관, 자유총연맹 김경재 총재,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목사와 성호 스님 등이 불안을 끊임없이 부채질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날인 1월 21일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나부꼈다. "그동안 미국이 경제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을 많이 도와준 만큼 성조기를 가지고 나오면 한국을 더 호의적으로 보아서 이번 탄핵 정국에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해서다.
'이 모든 것이 북한과 좌익 빨갱이들의 음모'라는 주장은 "계엄령 선포하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들 중에도 일부는 계엄령 선포 구호가 자칫 이들 집회의 순수성(?)을 흐리게 될까 우려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힘을 합쳐야 하는 판에 물을 흐리려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계엄령 선포' 주장은 국민을 위협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국가를 위해', 국민이 아닌, '빨갱이들'을 죽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외친다.
"집회를 넘어서서 전투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모두 군인 정신으로 빨갱이들을 때려잡아야 합니다."이러한 주장과 행동의 주축에 불교,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계가 참여하고는 있으나, 압도적으로 주축이 되는 이들은 역시 2004년 사립 학교법, 국가보안법 등 '4대 입법 개혁안' 반대집회를 주도하고 이후 보수 네트워크의 핵심에 자리한 보수 개신교계이다.
북한의 땅굴 남침 음모설을 주장하고 다니는 한성주 장군과 서경석 목사, 에스더기도운동 이용희 목사, '계엄령 선포 촉구 국민연합' 등 다수의 주요 인사와 조직들이 개신교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교회를 다니며 강연과 설교를 이어가면서 블로그, 카페, 유튜브, 카카오톡·카카오 스토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젊은층 참가자중 다수는 교회를 통해 집회에 나왔다. 1월 6일 <전자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국방부 앞에서 열린 '계엄령 선포 촉구 국민연합'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예배와 집회를 열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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