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신청 당일 학교 게시판. 주로 교육학 과목과 관련된 글이 많다.
차현아
이 수강신청이라는 제도에 백 번 양보해 공평함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해도, 애초에 바람직하지 않고 불필요한 '경쟁'을 만들 거라면 그 경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땅히 조성되어야 한다. 예컨대 학교 서버를 확충한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꽤 많은 경우 학교의 서버는 참으로 소박(?)하기 그지없기 마련인데, 가뜩이나 느린 학교 사이트가 수강신청 기간에는 아예 클릭도 힘들 정도가 되어 버리기 일쑤다.
수강신청 기간이 아닌 평소에는 대부분의 학교 사이트에 사람이 몰릴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일종의 합리성에 기반해 서버를 좀처럼 늘리지 않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달나라도 가는 21세기, 그것도 속도가 초당 100메가바이트 이상 나온다는 자칭 인터넷 강국에서 이런 일로 고통 받아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인터넷, 아니 홈페이지가 렉 걸리거나 버벅거려 한 학기 동안 자신이 별로 원하지 않는 수업을 들어야 하거나 수업 들을 권리 자체를 박탈당하는 경우 또한 옳지 않다.
학교 측은 늘 합리성을 이유로 서버 확충 또는 다른 대안의 모색을 사실상 거부하곤 하는데, 충분히 서로 불리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음에도 합리성 또는 학교의 편의를 위해 수강신청의 대상 모두가 진흙탕 싸움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안전망 없는 승자 독식의 시스템수강신청은 전형적인 Winner takes it all, 즉 승자 독식의 시스템이다. 성공한 사람은 다른 고민을 할 필요 없이 자신이 신청에 성공한 수업을 잘 들으면 되지만, 실패한 이들은 비슷한 전공이나 관심사의 다른 수업을 찾아다니거나, 그것도 실패한다면 한 학기를 그대로 망치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수강신청의 실패를 오롯이 그 실패한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에 대해서 어떠한 (학교 혹은 사회 차원의) 안전망이나 구제 시스템 없이 모든 책임을 수강신청에 실패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매우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사이다.
물론 그렇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자신의 (외부요인 가득한) 실패가 오롯이 자신의 책임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수강신청을 희망하는 과목들을 미리 담아두었다 편하게 신청할 수 있는 수강바구니라는 역할을 하는 시스템들이 경쟁에 있어 일종의 도구로 작용하긴 한다. 그러나 그것이 수강신청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고, 경쟁에서 실패했을 때 안전망 역할은 더더욱 해주지 못한다.
이러한 수강신청의 한계점을 어느 정도 보완하기 위한 장치들이나, 고전적인 철저한 선착순 수강신청 방식에서 벗어난 수강신청 제도들 또한 존재한다. 주어지는 수강신청 마일리지를 듣고 싶은 과목의 우선순위에 따라 분배해 신청하는 수강신청 마일리지 제도가 있고, 한 과목에 수강을 신청한 학생들이 정원보다 많을 경우 추첨을 통해 수강 인원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학년별로 수강 정원을 다르게 두는 경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제도이고 말이다.
외국의 경우도 별반 다를 것은 없다. 예컨대 일본 같은 경우는 추첨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종이에 적어 접수한 후에 신청이 되었는지 혹은 정원이 초과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매우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과 비슷한 수강신청의 방법들을 다른 나라의 대학교들에서도 사용하는데, 한국에서 수강신청의 방법이 추첨이나 마일리지 등 어느 정도 케이스-바이-케이스(case-by-case) 인 것처럼 외국의 경우도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수강신청 제도의 근본적 한계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