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이 경북 영덕 칠보산 기슭에 있는 오지 마을에서 머물며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했던 이야기를 책 <산막일지>로 펴냈다.
윤성효
"자연은 가장 오래된 경전" 지율 스님이 마을 사람들과 부대끼며 풀어 놓았던 생각을 몇 대목을 따라가 보면 재미있고 의미가 깊다. 지율 스님은 "자연은 가장 오래된 경전"이라 했다.
"자연의 신음소리에 함께 아파하며 쓰러져 가던 지율스님은 바람 소리, 빗소리, 할배의 장작 패는 소리, 댓잎이 사그럭거리는 소리, 할매의 구성진 노랫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긴 겨울 끝에 다시 봄이 오고, 또다시 낫과 호미를 드는 소농들의 삶. 돌고 도는 자연의 순리가 곧 깨달음이요, 경전이었다."
오지 마을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율 스님은 "칠순, 팔순을 넘긴 어르신들이 자기가 태어난 혹은 시집 온 집에서 예전 방식 그대로 농사를 지으며 한 해를 보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고 했다.
지율 스님은 "도시 사람들에게 계절의 변화라고 하면 옷차림이 달라지는 정도겠지만, 농촌에서는 마을 전체가 앉는 자리가 달라지고 하는 일이 바뀐다"며 "한 장 한 장 달력을 넘기듯, 철따라 달라지는 농촌의 풍경과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농부의 손과 발이 눈앞에 그려진다"고 했다.
지율 스님이 정리해 놓은 농사일지도 있다. 가령, 1월은 "할배는 마치 조각가가 조각품을 대하듯, 결의 흐름을 흩트리지 않고 장작을 쌓아두신다"라 했고, 2월은 "동제(洞祭) 전날은 일 년에 한 번 차를 불러 온 마을이 온천에 가는 날이다. 할매들은 목욕재계한 후 장을 보신다"고 했다.
3월은 "음력 2월 초하루는 '2월 할매'가 오시는 날이다. 이날 마을에서는 농한기의 마지막 마을 축제를 벌인다"고, 4월은 "아직은 바람이 차지만 할매들은 옷깃을 여미고 장에 나가신다. 봄 장은 장거리가 없으면 돌덩이라도 지고 따라 나선다는 나들이 장이다"고 했다.
12월 마을 사람들에 대해, 지율 스님은 "꿀통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신각 앞에 있는데 동지 전에 가장 추운 날 꿀을 딴다. 벌들이 추워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라 소개했다.
이 책은 누구도 기록한 적 없는 마을 어르신들의 작은 일대기다. 책에는 구십이 넘은 눈먼 할매, 팔순이 넘은 나무꾼 할배와 할매, 소를 모는 아재, 호미질로 하루를 시작하는 할매들의 삶이 담겨 있다.
장작을 쌓아놓은 광경을 본 지율 스님은 '조각작품'이라 했다.
"할배집 광과 마당에는 온통 장작이 쌓여 있다. 할배는 마치 조각가가 조각품을 대하듯, 결의 흐름을 흩트리지 않고 장작을 쌓아두신다. 사람들은 그렇게 쌓아둔 장작을 보고 앞으로 십 년은 나무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이 준비되고 있는 슬픔처럼 보일 때가 있다."
"논에 물꼬를 보고 올라오시는 국화 할배를 고갯길에서 만났다. 맨발에 흰 고무신, 손에 든 삽, 밀짚모자 그리고 등에는 지게를 지고 있다. 경운기 하나 없이 다섯 마지기 논과 천여 평 언덕 밭을 부치는 것은 할배와 할배의 지게이다. 어느 때는 똥장군이, 어느 때는 거름이, 어느 때는 콩이나 고추가 할배의 지게에 실려 있다. 언덕에 앉아 쉴 때도 지게는 할배와 거의 한 몸이 되어 등짝에 붙어 있다. 그렇게 칠십 평생을 살아오셨고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김택근(언론인)씨는 책에 대해 "지율은 풍경 속으로 들어가 산촌의 일부가 되었다. 지율의 이런 섬세함과 순수함이 있었기에 지난날 그리도 강했을 것"이라며 "지율은 산촌의 어르신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지난날'을 보여드리고 싶다. 당신들이 살았던 마을이 극락이고, 그 세월이 천국의 시간이었음을 알려드리고 싶다"고 소개했다.
지율스님의 산막일지
지율 지음,
사계절,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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