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물품을 전시하는 1층.
김영숙
주소가 '중구 신포로 31번길 38'인 관동갤러리는 도로명 주소 이전에는 '관동'이었다. 인근에 있는 중구청이 해방 후부터 1985년까지 인천시청으로 사용됐고, 지역에 관공서가 많아 '관동'이라는 지명이 붙은 것으로 도다 이쿠코 관장은 추측하고 있다. 지도에서 없어지는 지명을 기억하기 위해 이곳을 '관동갤러리'라고 지었다. 많은 기억과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이 새로운 창조와 공감을 낳는 공간으로 활용됐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갤러리 1층은 여러 물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만든 물건도 있고, 2층 갤러리에서 전시한 작가들이 판매용으로 두고 간 작품들도 있다.
"짐바브웨서 30년을 살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교육도 제대로 받기 어려운,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아프리카의 전통 음악과 예술을 가르쳐 자부심을 줄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있죠. 아트센터를 세워 전통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외국에 나가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 갤러리에서 그 학생들이 만든 공예품을 판매하는데, 수익금은 전액 아이들에게 돌아갑니다. 여기에서는 어디 가서 살 수 없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재밌는 물건을 만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현재 갤러리 2층에선 19일까지 류은규 교수의 개인전 '대륙적 일상'을 하고 있다. 류 교수는 10년 전 중국 문화대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중국 사진가로부터 받았다. '내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발표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그 사진작가는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이번 전시는 그 작가의 사진과 류 교수가 2005년에 제자들과 함께 문화대혁명 시대의 포즈를 재현해 찍은 사진을 비교할 수 있게 전시돼있다.
류 교수는 작가노트에서 "지금도 문화대혁명의 공과를 말하는 게 자유롭지 않은 이 때 중국사회가 갖고 있는 갈등의 단면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작품에 담았다"고 했다.
2층 갤러리에서는 오는 24일부터 3월 26일까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주제로 한 시화전을 열 계획이다. 일제강점기에 여성들도 독립운동을 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에 국가보훈처에서 여성들의 독립운동 활동을 인정해 독립운동가로 등록했지만,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2014년 12월 말 자료로 여성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은 사람이 246명이다.
갤러리 어느 곳을 둘러봐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이 없어 보여, 걱정스레 물었다.
"이곳은 타인을 위한 공간이자 우리를 위한 공간이에요.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많죠. 공사를 열심히 했는데 왜 문을 잠가 두냐, 커피와 음식은 왜 안 파느냐는 둥, 질문을 많이 했어요. 우리는 이걸 하려고 만들었어요.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행복하죠. 눈앞의 수익을 바라보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작가인 류 교수는 예전부터 갤러리를 갖고 싶어 했다. 자신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며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한다고 도다 이쿠코 관장이 들려줬다.
"작업만 하면 갤러리는 필요 없겠죠. 아파트에 살 때도 일본에 사는 지인이 많이 찾아왔어요. 그런데 집으로 오지 않고 식당이나 찻집에서 만나고 헤어졌는데, 그게 참 아쉽더라고요. 이런 공간이 있고 없는 건 큰 차이입니다. 또한 관동갤러리를 찾는 분들한테 이 동네의 역사까지 설명해주니까 좋아하더라고요. 여러모로 소중한 공간입니다."도다 이쿠코 관장은 이곳이 자신들이 죽고 나서도 이 형태로 계속 이어져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하기도 했다.
"역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이 집도 마찬가지죠. 사람은 잠깐 살면서 역사를 이어가는 다리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이곳은 한·중·일 세 나라의 문화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 3개국의 관계가 어려운데, 서로 모르기 때문이죠. 알면 쉽게 풀 수 있어요. 서민들의 사소한 생활물품도 문화의 산물이에요. 이곳에는 일본과 중국의 소박한 물건들이 많이 있어요. 미력하나마 이곳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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