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객들은 기자회견장에서 강제추방 반대와 폭력단속 규탄을 주장했다.
오병종
당시 공동대책위원이었던 '아시아의 친구들' 김대권 대표는 희생자들을 다시 추모객들 앞에서 호명했다.
"고향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머나먼 타국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이 하려고 하지 않았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감수하면서 노동을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인근 바다 양식장에서, 제조업체 공장에서 일하다 거기서 체불된 임금이 해결이 안 돼 예상기간보다 훨씬 오랜 기간 이곳에 있다가 비명횡사했던 것입니다."
play
▲ 여수화재참사 10주기 '아시아의 친구둘' 대표 김대권 ⓒ 오병종
그는 당시 병원에서 만났던 부상자들도 회고하며 외국이주민을 상대하는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을 때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병원 침대에 수갑을 채우는 법무부의 행태였습니다. 당시 많은 희생의 원인도 범죄자 취급하느라 도망가지 못하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부상자 역시 범죄자처럼 침대에 수갑으로 묶어놓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경미한 부상자로 처리되어 청주 보호소로 이송되었던 많은 생존자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고, 사고 원인을 밝혀줄 중요한 증인임에도 바로 귀국조치를 취했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자행된 겁니다."
play
▲ 여수화재참사 10주기 여수솔샘교회 정병진 목사 ⓒ 오병종
해마다 이맘때 조촐하게 이곳에 와서 추모 행사를 몇 차례 가져온 여수 솔샘교회 정병진 목사는 추모 현장에서 "하멜 일행이 360년 전 제주와 여수에 머물 때, 선조들은 잘 맞아주었는데 우리 역사는 후퇴하고 있다"며 "보호소 수용자들도 본국으로 돌아갈 때 인간적인 예우를 받고 돌아가도록 제도적인 보완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의 19개 출입국관리사무소 크건 작건 내부에 보호소가 있다. 하지만 여수 보호소처럼 많게는 160명까지 혹 그 이상의 대규모 인원의 보호소는 남부 지방을 맡는 여수와 중부 지방을 맡는 청주, 그리고 대전 이북의 이주민을 보호하는 화성 이렇게 세 군데가 있다.
play
▲ 여수화재참사 10주기 이주노조 박민우 사무처장 ⓒ 오병종
외국인 이주민 노동조합 박진우 사무처장은 전국의 상황이 유사하다며 여수참사 이후에도 끊이지 않은 사고 사례를 들며 변하지 않은 외국인 이주민 정책을 질타했다.
"화성에서 몽골인 이주노동자는 알코올중독자여서 징벌방에 가둬놓았는데 간질병이 있음에도 독방에 방치해 사망한 사고가 있었고, 인천 공항으로 호송하는 과정에서 이주노동자가 버스 안에서 사망하기도 했으며, 작년에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는 실명 위기 속에서도 일을 해오다 화성 보호소에 보호받게 되었는데 기자회견 한다는 말에 강제 추방시키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는 무슬림이어서 위험하다며 단속하는 과정에서 2층에서 추락해 크게 부상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대구에서도 이주노동자 단속 과정에서 심하게 다뤄 실명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살인적인 단속강화 방침 변경되어야 하고, 미등록 노동자는 합법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봅니다."
▲홍보용 차량을 이용해 만든 간이 헌화대에 추모객들이 국화 한송이씩 헌화하고 묵념을 올리고 있다.
오병종
발언에 이어 추모객들은 임시로 만든 헌화대에 국화 한송이씩 바치고 묵념하며 추모의식을 거행했다.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입구 문창살에 추모의 띠를 달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추모행사는 영하의 날씨 속 여수출입국관리소 정문 앞 길거리에서 이뤄졌다.
▲여수출입국관리소 정문에 추모 띠를 달고 있는 추모 참가 시민
오병종
화재 참사를 통해서 대한민국에 '외국인보호소'라는 명칭이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이른바 '불법체류자'라는 '미등록 이주민'들의 현실에 대해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아직 추모객들은 요구가 많다.
▲추모객중에는 '감옥'을 상징하는 창살 퍼포먼스를 선 보이며 서 있다.
오병종
이날 추모식에서는 '한국사회는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도 함께 진행되었다. 사회자인 여수진보연대 이광민 부장은 "그때 10년전에 바로 이곳이 '세월호'였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통해 주최 측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사회는 이주민 200만 명 시대를 맞았음에도 "정부의 인종차별적인 출입국외국인정책은 크게 나아진 점이 없고, 미등록이주민들의 인권개선 역시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고 지적헀다.
▲간이 헌화대의 인용 문구들"월급도 주지 않아 나와버렸습니다" "경비 직원이 도망가 버렸습니다" 10년전에도 '세월호'는 있었다.
오병종
이들은 또한 외국인 보호소의 무기한 구금을 허용하는 현행 출입국관리법 개정과 미등록이주민을 양산하는 외국인력도입 제도의 개선을 주장했다. 아울러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출입국 외국인정책'을 전면 수정하고, 전혀 '보호'가 이뤄지지 않는 '외국인보호소의 폐쇄'와 미등록 이주민들에 대한 합법화를 요구했다.
한편, 여수참사 10주기인 11일 연극으로도 여수보호소 화재사건을 다시 만난다. 서울의 영등포 문래창작촌에 위치한 샐러드극단은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 연극 "P.S. 진실아 미안해!"를 관객없이 인터넷 생중계 공연을 한다.
극단 샐러드 박경주 대표는 10년 전 참사 때 한 달 가까이 여수에서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사고 이주민들의 뒷수습을 돕기도 했다. 당시 영상을 편집하여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를 다큐멘터리와 실험극 형식으로 2010년에 "여수 처음 중간 끝"(극본/ 연출: 박경주)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11일 오후 3시 인터넷 생중계되는 '화재참사' 연극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 연극 "P.S. 진실아 미안해!" 포스터
오병종
이번 "P.S. 진실아 미안해!" 무대는 당시 사건을 직접 취재한 연출자 박경주의 경험을 허구적으로 구성한 창작물이다. 초연된 2010년 작품 일부가 영상미디어로 재구성되기도 한다.
"참사"라는 사회적 주제를 예술적 실험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샐러드의 도전은 11일 오후 3시부터 100분간 유튜브 샐러드 채널(
생중계 채널 바로가기)로 관객을 만난다.
외부 지원없이 순수 샐러드 자체 제작으로 이뤄지는 이번 공연에서는 샐러드 소속 이주민 예술가 로나 드 마테오, 오로나 울란치메크, 어니마싱이 참여하며 미디어 아티스트 석성석이 미디어 감독으로 참여한다(사회적 기업 샐러드'salad'
홈페이지 문의전화 02-2254-0517).
2007년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사건 개요 |
○ 2007년 2월 11일 03시 55분경 여수출입국관리소 외국인보호소 3층 304호 보호실에서 화재 발생함. 이 화재로 인해 구금되어 있던 55명의 외국인 가운데 10명 사망. (손관충, 진선희, 이태복, 김광석, 에르킨, 장지궈, 양보가, 리샤우춘, 김성남, 황해파) 17명 부상.
○ 화재 당시 근무자는 직원 4명, 용역경비원 5명 등 총 9명. 근무일지상에는 감시실에 직원이 근무하게 되어 있으나 용역경비만 근무하고 있었음. 경비를 담당하던 직원들은 연기와 불길에 휩싸인 상황에서 외국인들의 구조 호소를 외면하고, 도주를 우려하여 이중 잠금장치를 여는데 시간을 오래 지체하였음.
○ 그 결과 10명이 우레탄 매트리스가 타면서 발생한 유독가스와 연기에 질식해 숨졌고 다수의 생존자들도 부상과 후유증을 얻었음. 화재당시 스프링클러는 설치돼 있지 않았고, 화재경보기 등 소방시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
○ 이후 하급 공무원들과 경비 등이 처벌받았지만 제대로 지휘책임자들은 처벌되지 않았음. 또한 시설폐쇄와 인권공간으로의 재편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수외국인보호소는 약간의 시설 개선 이후 다시 구금시설로 운영되고 있음.
○ 국가인권위원회는 2007년 2월 27일 직권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조사에 착수하였음. 조사 결과, 화재 당시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실 3층에는 경비용역 2명만 근무를 서고 있었으며, 보호실의 구조와 운영은 구금시설과 다름 없었으며 출입문은 이중 장치로 시건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음.
○ 화재 사고 피해자중 최장기 보호외국인의 보호 기간은 1년 3개월로 대부분 임금체불이 이었음.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는 구금 외국인들에 대한 권리구제 절차 안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음.
○ 사고 후 수습과정에서도 화재사고 직후 일부사고 피해자들에 대하여 수갑을 채운 채로 병원 치료를 받게 하였으며, 사고피해자들을 출국시키는 과정에서도 권리구제 절차에 대해 충분히 안내하지 않고 정신과적 진료도 없이 강제 출국시킨 것으로 드러났음. 부상자들은 추후 후유증 치료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과 보상을 받지 못하였음.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