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bee의 방에 남겨진 '카우치서핑'의 추억
이명주
역시 대만 신베이시 Smallbee(스몰비, 아래 비)의 집. 그녀와는 그녀의 작은 방을 함께 썼다. 비의 침대 옆 바닥에 단출한 이부자리가 내 자리였다. 대만에서 한 달 여행을 끝내기 이틀 전, 사실 '어디서건 잠만 자면 그만'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낯선 이와 같은 방을 쓰는 게 어색할 것 같았지만 그는 호스트 경험이 풍부했고, 여행자들의 평가도 모두 긍정적이라 일단 갔다.
그런데 이틀간 비를 보며 처음으로 '좋은 공간', '좋은 호스트', '좋은 게스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도착하자, 편히 짐을 풀고 충분히 쉴 수 있게 방을 비워주었다. 덕분에 정말 편히 두 시간쯤 자고 일어나자 이번엔 근처 야시장 구경을 권했다. 다음 날엔 자전거까지 준비해 또다른 명소로 안내했고, 가는 날은 이른 새벽 버스정류장까지 배웅을 했다.
나는 여행 전 딱 한 번 내 집으로 여행자를 초대했었다. 사실 앞으로 내가 도움을 청할 사람들에 호감을 얻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리고 '잠만 재워주면 내 할 일은 더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비를 통해서 카우치서핑이 다만 공간만을 나누는 것이 아닌, 마음을 나눔으로써 서로의 같고 다름을 이해하고 나아가 각국의 문화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을 키울 수 있음을 배웠다.
▲'좋은 공간'이란?
이명주
중국 샤먼시 Zuzana(주자나)의 집. 여기서도 좋은 공간이 결코 보기에 좋은 집만이 아님을 절감했다. 그녀의 집은 담배 냄새를 빼면 맨 처음 오즈네 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내 잠자리는 옷장과 탁자 등이 놓인 일종의 다용도실에, 분명 꽤나 오랫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듯한 큰 쿠션 위였다. 신발을 신는 문화 탓에 바닥엔 흙과 다른 먼지가 가득했고 화장실 냄새도 났다.
잠시 '이럴 거면 왜 사람을 초대하지?', '혹시 내가 놀라서 가길 바라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상냥하고 배려심 많은 주자나에게 금세 호감이 생겼고, 부정적인 의도는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근처 아름다운 항구로 나를 안내했고, 넉넉지 않은 유학 생활 중임에도 저녁 식사까지 대접했다.
그래도 잠은 쉬이 안 오겠지 했는데 웬일, 그때까지 중 가장 편한 잠을 잤다. 주자나는 자유분방하고 그저 무심한 듯한데도 상대를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보여지는 집이 보이지 않는 마음에 따라서 '좋은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몸소 느꼈다. 그리고 '잠만 자면 그만', 동시에 '재워주면 그만' 했던 나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모자랐는지도 반성했다.
▲베트남 하노이의 호아네 집
이명주
끝으로 베트남 하노이의 Hoa(호아)네 집. 가장 강력한 반전이 있었던. 베트남에서의 카우치서핑은 앞선 두 나라와는 달랐다. 소액의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고, 대부분은 자신이 운영하는 '영어 교실' 수업에 동참해 달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니 영어권 여행자가 환영 받는 분위기였다. 이런 차이는 아마도 그들의 열악한 경제 상황도 한 이유인 듯하나 정확히는 모른다.
호아 역시 자신의 집에서 이웃들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영어를 못해도 상관 없다며 나를 초대했다. 그녀는 다른 집들과 비교해 꽤 좋은 아파트에, 자신보다 큰 펌프킨(pumpkin, 호박)이란 이름의 골든 리트리버와 살고 있었다. 서핑 중에 그녀의 소개글에서 개를 키운다는 내용은 봤지만……, 그 녀석과 같이 자게 될 줄은 몰랐다!
▲나의 '룸메이트'
이명주
내 잠자리는 거실 한쪽에 놓인 매트리스 위. 호아와 펌프킨이 밥을 먹고 노는 공간이었다. 밤이 되면 호아는 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펌프킨은 거실과 그녀의 방 두 개를 오가며 제 멋대로 잤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녀석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트 주변의 똥과 오줌, 그걸 묻힌 채 녀석이 내 매트리스에 눕는 것까진 아니었다.
그냥 숙소를 얻어 떠날까도 몇 번씩 생각했지만, 여독이 극에 달해 그마저도 귀찮았다. 결국 갈 때 가더라도 할 말은 하자 싶어 호아에게 솔직히 말했다. "개가 있다고는 했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적어도 손님에 대한 예의가 있다면 똥오줌은 얼른 치워야 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호아와의 다툼까지 예상했지만 그녀는 곧바로 수긍하곤 열심히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입장을 바꿔 내가 그녀였고, 내 집에 온 여행자가 나처럼 굴었다면? 예전의 나는 "공짜로 재워주는데 웬 말이 많지? 아님 당장 나가든지"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되레 성급하고 소심했던 것 같아 미안했다. 이후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고, 나흘 뒤 호아네 집을 떠나서도 계속 만나 추억을 쌓았다. 최악일 뻔한 만남이 소중한 우정의 시작이었다.
여기까지다. 소개된 사례들이 저마다 별난 구석이 있어 카우치 서핑에 대한 편견 혹은 두려움을 키울까 다소 염려스럽다. 서두에 밝혔듯 약 세 달 여행 중 31일을 여러 곳에서 카우치 서핑을 했다. 그 중에는 타워 팰리스 같은 엄청나게 호화로운 아파트도 있었고, 내 집처럼 지극히 평범한 곳도 많았다. 요는, 역시 최고는 '좋은 마음'이라는 점.
카우치서핑 일지 (2016. 11. 9 ~ 2017. 1. 29) |
"Thanks to everyone who shared a good space and heart." 좋은 공간과 마음을 나누어준 모든 카우치서핑 호스트들에 감사합니다.
대만 Oz's home 2016. 11. 9 Wanhua District, Taipei City Nicky's home 11. 9-21 Banqiao Dist, Taipei Smallbee's home 12. 7-9 Sanchong District, New Taipei City
중국 Zuzana's home 12. 9 Xiamen Shi, Fujian Sheng Colin's home 12.10-13 Xiamen, Fujian Polgar 12. 15-18 Shanghai, West Jiading Erica & Pan 12. 28 - 2017. 1.2 Xian, Shaanxi Kai 2017. 1.2 Xian Shi, Shaanxi Sheng
베트남 Hoa 2017. 1. 9~13(12) Hanoi, Vie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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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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