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그림
나무숲
그림책 <신사임당>은 지난 2000년 언저리에 살펴보았을 적에도 돋보이는 어린이 인문책이라고 할 수 있었어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만 보는 옛 그림이 아니라 집에서 어버이 무릎에 앉아서 '아름다운 그림결'을 늘 헤아리면서 이 그림이 어떻게 기나긴 해를 흘러올 수 있었나를 북돋아 주어요.
글쓴이 조용진 님은 신사임당 그림을 두고 "꾸밈없는 마음에서 비롯한 꾸밈없는 그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작은 숲을 이룬 집에서 작은 숲을 고스란히 담은 그림"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사회와 사내들이 작고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것이 작지도 않고 보잘것없지도 않다는 대목을 오롯이 그림으로 보여주"기도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신사임당은 달랐습니다. 중국의 그림본을 그대로 옮겨 그리기보다는 우리의 모습을 대신 그리기도 하고, 검은색만으로 표현되는 수묵화 대신에 색을 칠하여 그리고, 작은 풀과 벌레를 그림에 담기도 했습니다. (21쪽)이른바 '시대를 앞서간 화가'로 손꼽을 수 있는 신사임당이라는 분은 '따라쟁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따라하거나 베끼는 그림'이 아니라 '신사임당 눈으로 본 삶을 신사임당 손으로 담은 그림'을 펼쳐 보였다고 해요. 사회도 사내들도 그저 '중국을 섬기거나 따르거나 베끼는 흐름'이었다지만, 이를 좇지 않고서 '작고 수수한 이 땅 이 살림'을 고이 담아냈다고 합니다.
풀을 그리고 벌레를 그립니다. 쥐가 갉아먹은 수박을 그리고 포도넝쿨을 그립니다. 이러면서 언제나 스스로 정갈하고 곧은 몸짓을 건사합니다. 이녁 아이들이 삶으로 살림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물려받아서 배울 만한 숨결을 시나브로 가르칩니다.
책이나 지식으로 아이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어요. 너그러운 마음과 따사로운 사랑과 정갈한 손길을 온몸으로 물려주듯이 가르쳤다고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