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리 궁전 내 사자의 정원왕을 제외한 남자들은 일체 출입할 수 없었던 '금남의 공간'으로, 현재 일부 공사 중이다.
서부원
알람브라 궁전의 감동은 헤네랄리페에서 완성된다. 알카사바의 장중함도 없고, 나사리 궁전의 화려함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곳은 인공과 자연, 종교와 과학, 역사와 전설이 마구 혼재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세월이 흘러 주인은 떠났어도 서사는 고스란히 남았다. 만약 헤네랄리페가 없었다면, 알람브라 궁전은 그저 크고 화려한 이슬람 궁전쯤으로 소개됐을 것이다.
나사리 궁전이 눈을 크게 뜨고 감상하는 공간이라면, 이곳은 청각에 더 의존해야 보이는 곳이다. 서사는 시에라네바다 설산에서 끌어온 물을 타고 분수가 되어 흐른다. 메마른 땅에서 생명수와도 같은 물을 그들은 온갖 기술을 동원해 모으고 머물고 흐르고 돌게 만들었다. 물이 흐르며 내는 돌돌거리는 소리가 마치 악기소리 같다. 그러고 보니 타레가가 악상을 떠올린 곳도 바로 이곳 헤네랄리페다.
이곳엔 '물 반, 나무 반'이다. 언뜻 비가 자주 내리고 물이 풍족한 땅으로 오해할 법하다. 물에 비친 그림자조차 짙은 초록색이다. 곳곳에 설치된 분수와 함께 계단의 소맷돌에까지 홈을 파서 물길을 내어놓았다. 햇살을 가려서 더위를 피하기보다 물과 나무로 햇살을 그대로 받아 안아 더위를 식히겠다는 발상일까. 여긴 적어도 눈과 귀로는 더위를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헤네랄리페가 물이 만든 예술품이라면, 그 시원은 궁전이 기대고 있는 시에라네바다 설산이다. 이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만년설의 풍광은 단연 압권이다. 바람난 후궁을 대신해 죽임을 당했다는 나무의 사연도, 이슬람 세력을 축출한 가톨릭 왕조가 차마 이곳만큼은 파괴하지 못했다는 전설도, 자연이 만든 풍광 앞에서는 힘을 잃게 된다. 헤네랄리페는 '조물주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가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해 찍었지만, 그 어떤 사진도 그때의 감동을 담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그곳이 맞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알람브라 궁전은 다시 가슴 설레게 하는 기억으로 남았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보낸 하루가 꿈만 같다. 세계 일주의 꿈을 갖게 한 그 반환점에 다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