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산성의 성벽
정만진
1594년 11월 12일,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물러나겠다고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한다. 조정은 이순신의 자진 사퇴 청원을 원균과의 불화 때문에 빚어진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조정은 군대 문제를 총괄하는 비변사 회의를 거친 후 11월 28일 '두 장군의 극심한 불화 때문에 수군 전체의 지휘력과 전투력 발휘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선조에게 처분을 묻는다. 선조가 대답했다.
"이순신을 다른 자리로 보내는 경우에는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삼고, 아니면 원균을 충청병사로 보내고 다른 사람을 경상우수사로 삼아야겠다."그렇게 말한 선조는 12월 1일에 이르러 대신들에게 어떤 결론을 얻었는지 물었다. 대신들은 세 사람을 추천했다. 결국 12월 19일 배설이 원균의 경상우수사 후임으로 정해지고, 원균은 충청병사로 옮기는 것으로 결판이 났다. 원균과 배설의 교대식이 거제도 경상우수영에서 거행되었는데, 여기서 원균의 불만이 폭발했다.
1595년 2월 27일자 <난중일기>에 따르면 '임금이 내린 문서에 공손히 절을 하라는 말을 들은 원균의 표정에 불평하는 빛이 많았다. 결국 주위 사람들이 두세 번 재촉하자 원균이 억지로 절을 했다.' 이 교대식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던 이순신은 누군가로부터 들은 내용을 기록하면서 '너무나 무식한 것이 가소롭다'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순신 왈 "원균은 무식하고 가소롭다"무식한 것이 가소롭다? 원균에 대한 혹평이다. 그 외에도 이순신은 원균에 관한 상당수의 참혹한 평가를 일기에 싣고 있다. 일기에 무슨 내용을 쓰든 그것은 본인의 자유일 터, 이순신이 원균에 대해 나쁘게 썼다고 해서 그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선조가 다른 두 장수의 불화를 예로 들면서 "과장된 말이겠지만, 두 사람은 물과 불의 상극이기 때문에 전쟁 중에도 서로 구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서로 해칠 것이다.(1594년 11월 12일 <선조실록> )"라고 발언하는 상황은 큰 문제임이 분명하다.
수군을 대표하는 이순신과 원균 두 장군이 서로를 너무나 싫어했다는 것은 나라의 큰 손실이다. 한산대첩을 이룰 때만 하더라도 함께 적을 무찔렀는데, 점점 사이가 나빠져 임금과 조정 관리들이 두루 걱정하는 지경까지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순신과 원균의 화해를 위해 바치는 시 한 수상당산성 남문 위에 서서, 두 분이 묵은 감정 따위는 잊고 하늘에서나마 정겨운 사이로 재탄생하시기를 소망해본다. 이 성은 이순신과 원균 두 분 모두에게 인연이 있는 곳이니 그런 소박한 바람을 빌기에는 아주 적격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