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의 현재를 상징하는 스페인 광장1992년 세계 엑스포 박람회장으로 쓰였던 곳으로, 세비야와 스페인의 부흥을 상징하는 초대형 건축물이다.
서부원
세비야 대성당의 원래 '주인'은 따로 있다. 세비야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되는 산 이시도로 주교 형제와 산타 후스타와 루피나 자매가 그들이다. 산 이시도로 주교는 중세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199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기도 했다. 한편 산타 후스타와 루피나 자매는 3세기 말 신앙을 지키려다 로마인에게 죽임을 당한 순교성인으로, 현재 세비야 기차역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성당 곳곳에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긴 하지만, 정작 그들을 찾고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콜럼버스의 묘 앞에 그들의 이름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일정이 빡빡한 단체 관광객들은 콜럼버스만 만나고 대성당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대성당과 100미터에 육박하는 히랄다 종탑의 위용도 콜럼버스라는 이름 앞에서는 무게감이 떨어진다.
세비야 대성당의 진짜 주인이 콜럼버스이기 때문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모스크 위에 거대한 성당 건축을 덧씌울 수 없었을 테고, 황금으로 만든 제대도 가질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금은보화의 무한한 공급처, 신대륙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성당 건축은 물론, 세비야의 번성 역시 애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콜럼버스는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며 세비야의 '꿈'을 상징하는 존재다.
세비야 여행의 첫 번째 코스가 대성당이라면, 대개 마지막 코스는 거대한 반원형 건물이 회랑처럼 두르고 있는 스페인 광장이다. 1992년 세비야가 세계 박람회(엑스포)를 유치하면서 만든 초대형 전시장이다. 우리에게는 배우 김태희가 어느 광고에 출연해 플라멩코 춤을 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사시사철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최고 명소가 됐다.
16세기 영화를 뒤로 하고 그저 그런 지방 도시로 전락한 세비야와, 시나브로 유럽의 변방으로 밀려난 스페인의 재도약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콜럼버스로 인해 500년 전 번영이 시작됐듯, 이 광장에서 세비야와 '무적함대' 스페인의 부활을 이끄는 또 다른 '콜럼버스'의 출현을 기다리는 것이다. 과거의 대성당과 미래의 스페인 광장은, 그렇듯 콜럼버스를 통해 만나고 있다.
신항로를 개척한 이탈리아의 괴짜 탐험가 콜럼버스는, 역사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세비야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며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에워싼 그의 묘 앞에서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21세기 세비야의 수호성인은 콜럼버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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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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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묘가 세비야에 '있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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