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에서 밥을 먹게 해준 고마운 두 청년.
이명주
다시 혼자. 읽을 수 있는 책은 없고, 음악 듣기는 지겨웠다. 기대했던 창 밖 풍경은 지루함과 삭막함의 연속. 커다랗게 잘린 산, 파헤쳐진 땅, 꼭같은 모습으로 쌓아 올린 높은 집들의 잿빛 뼈대들…….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사라졌을까' 하는 물음과 함께 불안이 솟았다. (이 불안의 정체에 대해 다음 번에 자세히 말하겠다)
밤이 되니 낮부터 스멀대던 담배 냄새가 짙어졌다. 객실마다 '금연' 표시가 있지만, 출입문이 있는 차량 연결 구간에선 흡연이 가능했고, 식당칸에 갔더니 아예 승무원들이 담배를 나눠 피고 있었다. 객실 문을 열어둬 온갖 냄새가 차량 안에 퍼졌다.
10시가 되자 불이 꺼졌다. '정전인가' 했는데 예정된 소등이었다. 이후 타는 승객들은 어둠 속에서 자리를 찾았다. 나는 부실한 식사 탓에 배가 고팠고, 등이 아팠으며, 자다 깨다를 몇 번이나 반복해도 여전히 밤이라 '시간이 단순해지면 더 길어지나?' 하는 생각을 하다 다시 잤다.
마침내 날이 밝고, 전날 10시경 탄 열차에서 오전 9시쯤 내렸다. 첫 열차 여행의 교훈. 중국에서 장시간 열차를 탈 때는 반드시 충분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준비할 것. 좌석 예약은 무조건 1층. 돈 여유가 있고 특히 일행 중 노약자가 있다면 따로 출입문이 있는 4인 침실칸 추천.
방심하면 탈이 난다? 이번엔 쑤저우에서 시안까지 15시간. 앞서 경험을 거울 삼아 이번엔 도시락밥에 사발면 등 먹거리도 충분히 샀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전자책도 다운받았다.(그렇게 믿었다). 기차 예약은 쑤저우에서 한 주 내 묵었던 숙소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저녁 7시 35분 탑승.
미리 밥 먹고 세수하고 양치까지 했다. 기차를 타면 얼마간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가 편히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라? 침대가 없다! …… 숙소 직원 한스가 "소프트 싯(soft seat)"과 "하드 싯(hard seat)"이 있다 하여 "소프트 싯"을 골랐는데, 그 "싯"이 침대가 아니고 의자!
'하드 싯을 골랐으면 정말 골병이 들었겠군' 생각하며 일단 자리에 앉았다. 사실 열차 자체는 한국의 KTX나 새마을호 환경과 비슷하고 되레 좀 더 넓어서 불평할 게 없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하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런데 어라? 이번엔 책이 없네!
생각해보면 숙소 직원 한스는 영어가 무척 서툴렀고, 티켓 가격이 너무 쌌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전자책을 다운로드 받을 때 '확인'이나 '완료' 버튼을 누른 기억이 없다. 결국 밤새 앉은 자세로 역시나 자다 깨다를 반복, 이른 아침 따뜻한 사발면과 찬밥으로 속을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