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현장 촬영이 아닌 영화 <섹스 볼란티어>의 스틸컷임)
조경덕 감독
이윽고 교보문고에서 책 몇 권을 사들고 타임스퀘어를 나서 흥에 부풀어 조금 걸었을 때, 먼발치에서 아까 커튼이 쳐져 있던 가게들에 선홍빛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 보였다. "불 켜져 있네? 한 번 가볼까"라는 생각에 '영신로 24길'에 들어섰다. 불빛이 가까워지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점점 뚜렷해져갔다.
"설마..."군 복무 시절 내가 한창 청소 중일 때, 다음날 휴가인 선임들이 용주골이 어떻고 영등포가 어떻고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품평하고 음담패설을 하며 자기들끼리 무언가 작당 모의를 하던 기억이 났다.
영등포, 빨간 불빛, 다소 노출 있는 복장의 여성들. 모든 정보를 종합해볼 때 이곳이 말로만 듣던 '홍등가'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 낯선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내심 당황하며 걷고 있을 때, 여성 몇 분이 다가와 "오빠, 놀다가자"라고 하자 추론은 사실로 확정됐다. 조용히 목례를 하며 "괜찮아요"라고 몇 번 말씀드리자 붙잡지 않았다.
'영신로 24길'을 나오는 옆길에서 또 다른 여성 몇 분이 활짝 웃으며 "오빠, 놀다 가세요!"라고 했다. 이분들은 아까 여성분들보다 나이가 조금 있어 보였다(나중에 구글 검색을 해본 바에 의하면, 이러한 고참급 여성들을 홍등가에서는 은어로 '펨프'라 부른단다). 그때였다. 비로소 아까 용도를 알 수 없었던 철제 박스와 비닐 천막들의 정체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