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의서프로젝트 품의서를 구매팀장님의 이름으로 대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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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의 외침은 '구매, 수불관리 고도화'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냈다. 프로젝트의 주관부서는 본사의 단말기 관리분야를 총괄하는 구매팀이 지정되었고 전산팀 담당자와 함께 프로젝트 멤버가 구성이 되었다. 그리고 현업의 프로세스를 본사 직원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지역본부 근무자들 중 한 명이 프로젝트 구성원으로 참여해야 했고 전사 대표로 내가 차출되었다.
프로젝트 멤버로 차출되어 서울로 올라가기까지도 많은 시련이 있었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 중 단순 ERP 운영 업무외에 각 지역별 협력업체 현황을 집계하고 월별 총괄 보고되는 자료는 동료들이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 업무는 서울에서 내가 원격으로 처리하기로 하고 프로젝트팀에 합류했다.
프로젝트팀에 합류하면 6주간을 서울에서 지내야 하는데 업무를 하지 않는 주말에는 숙박비 지원이 안 됐다. 매주 월요일 서울에 올라가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지냈다. 왔다갔다 교통비나 숙박비나 마찬가지였는데 처리 규정상 주말 숙박비 지출이 안됐기 때문에 매주 서울과 부산을 왔다갔다 해야 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제대로된 ERP 시스템을 구축하여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고 좀 더 수월하게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본사에 입성했다. 그런데 막상 올라가고 보니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품의'를 득결하지 않은 상태였다. 경영지원실장님의 결재가 나야 예산을 받아서 일을 진행 할 수 있는데 품의도 하지 않은채 이미 나는 서울에 올라왔고 외주 개발팀도 들어와서 업무를 시작하고 있었다.
구매팀에서는 급하게 프로젝트 품의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기안자는 구매팀장님이었다. 기존에 각 지역별로 각자 경영하던 회사가 '본사'체제로 개편한 지 오래 되지 않아 구매팀도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때였다. 그래서인지 구매팀장님은 현업 프로세스에 대해 알지 못했고 현업에서 어떤 문제로 인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지 품의서에 녹여내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이없게도 잠시 후 내가 구매팀장님 자리에 앉아 품의서를 대신 작성하고 있었다. 입사한 지 겨우 3년도 안된 내가 고참 부장급인 구매팀장의 이름으로 품의서를 대신 작성한다는것 자체가 코미디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코미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잠시 후 작성된 품의서를 결재받기 위해 평소 같으면 얼굴도 잘 쳐다보지 못할 임원 방에 들어가 직접 프로젝트의 필요성에 대해서 브리핑했다.
2시간여의 설득 끝에 억 단위의 예산이 필요한 프로젝트 품의서에 실장님 사인을 받아냈다. 그리고 내가 머물 숙소를 잡았다. 결재를 받아내지 못했으면 다시 싸온 짐 그대로 들고 내려가야 할 판이었는데 다행히 잘 해결이 되긴 했다. 입사하고 처음 해본 황당한 경험이었지만 실장님이 품의서에 사인을 할 때 묘한 쾌감이 들기도 했다. 이리도 어렵게 내 첫 서울 생활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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