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선생 생가지 입구에는 45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반긴다.
김종신
남명교에서 잠시 외톨이 마을 풍경을 둘러본 뒤 다리를 건넜다. 450년이 넘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 입구에서 반긴다. 느티나무 옆에는 '이곳은 조선 중기 실천유학자 남명(南冥) 조식(曺植 : 1501~1572) 선생이 출생하여 '경의(敬義)'의 학문을 완성한 유서 깊은 고장이다'로 시작하는 남명로(南冥路) 안내판이 나온다.
선생은 합천군 삼가면 외톨이 토동(兎洞,톳골)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벼슬길에 나선 아버지를 따라 주로 서울에 살았다. 26세 때 아버지가 별세하자 고향인 삼가면 하판리 지동(枝洞,갓골)에 장사지낸 뒤 삼 년 동안 무덤 근처에서 여막을 짓고 살면서 무덤을 지켰다.
이후 30세부터는 처가인 김해에서 산해정(山海亭)을 짓고 학문에 전념했다. 45세 때 어머니가 별세하자 역시 고향인 지동 아버지 묘소 동쪽에 장사를 지낸 뒤 삼 년 동안 묘를 지켰다. 48세에 삼가 토동으로 돌아와 뇌룡사(雷龍舍)를 짓고 계부당(鷄伏堂)을 짓고 선생이 61세에 산청 덕산으로 가진 전까지 학문을 체계화하고 후진을 양성한 곳이란다.
나무 옆에 '홀로 선 나무를 읊다(詠獨樹)'라는 선생의 시를 새긴 시비가 있다.
'무리를 떠나 홀로 있기에(離群猶示獨)/ 스스로 비바람 막기 힘들겠지(風雨自亂禁)/늙어감에 머리는 없어졌고(老去無頭頂)/ 상심하여 속내가 다 타버렸네(傷來燬腹心)/ 아침에는 농부가 와서 밥 먹고(穡夫朝耦飯)/ 한낮에는 야윈 말이 그늘에서 쉬네(瘦馬午依陰)/ 다 죽어가는 등걸에서 무얼 배우랴(幾死査寧學)/ 다만 하늘에 떴다 가라앉았다 하네(昇天只浮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