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미국의 푸들'이라고 비판한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 기사.
<폴리티코> 홈페이지
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2014년 1월 22일
기사에서 반 전 총장이 "중요 사건에서 미국에 저항한 것이 없다"(it's hard to think of significant cases where he's defied Washington)고 지적하면서 그를 '미국의 푸들'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전문지인 <포린폴리시>도 반 전 총장 임기 만료 직전인 지난해 12월 28일 기사에서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분쟁 문제 등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명목상의 최고 지도자였다"면서 "역사상 가장 친미적인 사무총장(the most pro-American U.N. secretary-general in history)"이라고 평가했다.
2009년 5월 5일 당시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반기문 총장과 3차례 대화한 내용을 보고한
전문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유엔 학교를 2008년 12월과 2009년 1월 사이에 폭격한 것을 두고 반 전 총장이 유엔의 독립적 조사단을 꾸리려 했다가 미국이 반대하자 그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같은 미국 중심의 행동들이 그에게 치욕적인 오명을 따라붙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협약 부분을 제외하고는 '업무 능력'면에서도 낮은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경제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9년 6월 11일 반기문 전 총장의 첫 임기 상반기를 평가하는
기사에서 각각의 분야를 10점 만점 척도로 평가하면서, 기후변화 협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업적을 근거로 '큰 그림 그리기'에만 8점을 부여했고, '강자에 대한 진실성' 항목에서 3점, '조직 운영' 측면에서 2점을 줬다.
"가장 우둔한 총장", "어디에도 없는 남자" 이 잡지는 7년 뒤인 지난해 5월 21일 '
Master, mistress or mouse? (능력자, 권력에 빌붙는 자, 아니면 무능력자?)' 기사에서도 "그를 가장 우둔하며(the dullest)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among the worst)"이라고 혹평했다. 파리기후 협정 합의를 이끌어낸 성과를 인정했을 뿐, 9년이라는 임기를 지냈으면서도 모로코와 서사하라(West Sahara)간 문제를 언급함에 있어 '점령'이라는 문제적 어휘를 사용하는 등 중대한 실수를 쉽게 저지른다는 것이었다. "대체로 반 총장은 모두가 거부하지 않을 가장 자질이 부족한 후보(lowest common denominator)를 뽑곤 하는 유엔의 단점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고까지 지적했다.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가 2009년 6월호에 실은
'어디에도 없는 남자 : 반기문은 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인가? 기사 제목은 원색적으로까지 느껴진다. 보수성향 잡지 <내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의 제이콥 헤일브룬(Jacob Heilbrunn) 에디터는 반 사무총장이 "유엔을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었다"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자 세계를 누비는 '관광객'"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밖에도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2009년 7월 14일)과 영국의 <가디언>(2010년 7월 22일)은 각각 그를 "유엔의 투명인간"이라고 했고, <뉴욕타임스>(2013년 9월)도 '반기문은 어디 있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워싱턴포스트>는 2010년 7월 20일자에 유엔 내부감찰실(OIOS)의 잉가 브리트 알레니우스 전 실장이 2010년 유엔을 떠나면서 쓴 50쪽짜리 보고서에서 "유엔은 투명성도 없고, 책임감도 부족하다", "유감스럽게도 유엔이 부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온실가스 감축 체제인 파리기후변화협정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조약으로 성사시킨 공로'로 지난해 12월 12일 <포린 폴리시>가 선정하는 '2016 세계의 사상가'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를 둘러싼 전반적인 혹평을 되돌리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반기문 "재선 흔들기", "동양 스타일 이해 못하는 비판" 등 반박 반 전 총장은 <반기문과의 대화>(톰 플레이트 <LA타임스> 전 논설실장과 대담한 내용을 펴낸 책, 2013년 8월) 등에서 이 같은 비판들을 향해 2011년에 유엔 사무총장직 1기 임기 만료를 앞두고 차기 총장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나온 '흔들기'였다거나, 유럽식 조직운영과 업무처리 방식에 익숙해 있는 유엔의 관료나 서구 언론이 막후 조율을 통해 해법을 도출해내는 동양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기사들이라고 반박했다.
지나치게 원색적인 비판도 섞여 있는 것을 볼 때, 실제 그런 점도 있어 보인다. 또 유엔 사무총장이 '세계 대통령'이라는 한국인들의 인식과는 달리, 유엔은 P-5(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상임이사국의 과두체제이며 사무총장은 이들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상징권력'이라는 점을 간과한 과도한 비판들이라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전 총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밑바탕에는 그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는 '관료주의적' 태도로 임하고 있으며, 미국의 이익에 충실한 인물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로 인해 10년 전 그가 취임할 때보다 유엔이 나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반 전 총장의 후임인 포르투갈 총리 출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신임 사무총장은 지난 해 12일 취임사에서 "유엔은 변화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우리의 가장 심각한 단점은 위기를 막는 데 무능함이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을 비판하는 서구 언론과 관련해 "특히 영미 계통 언론들이 나에게 비판적"이라고 했다. 영미권 언론이 아시아 출신 총장을 편견적이고 인종주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주장이지만 이것도 사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