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지하철 문은 수동으로 개폐된다
김종성
사실 지하철 이야기를 시작한 까닭은 다른 데 있다. '문(door)'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냐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던 둘째 날, 숙소 근처의 '뒤플렉스' 역 플램폼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파리의 지하철 역은 이런 느낌이구나?'라며 감상에 빠져 있는데, 드디어 열차가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맨앞에 서 있던 사람이 다짜고짜 문에 달린 손잡이 같은 걸 잡고 돌리는 게 아닌가?
파리 지하철 문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 |
파리 지하철 문은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자동으로 한꺼번에 열리는 시스템이 아니다. 승객들이 문을 열기 위해 따로 조작을 해야 한다. 고리를 젖히거나 버튼을 눌러야 한다. 하지만 버튼을 누르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기 때문에 '자동' 요소가 들어 있다. 과거 자동차 창문은 손으로 일일이 돌려야 움직였지만, 지금은 버튼만 누르면 올라가고 내려간다. 이처럼 파리 지하철 문 또한 자동 기능이 들어가 있지만, 사람이 일일이 조작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동 성격'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그러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사람들이 열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다 '컬쳐쇼크'를 느꼈다. 당연히 자동문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뭔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뭐지? 왜 수동이야, 불편하게?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자동으로 열리면 굳이 손잡이를 돌려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저들은 왜 이런 불편함을 감내하고 있는 걸까.
문이 '수동'이다보니 열차의 문은 량(輛)마다 개별 작동했고, 승하차할 사람이 없는 역에선 당연히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난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전체 열차의 문이 함께 개방됐다가 닫히는 서울의 지하철과는 전혀 다른 양태였다.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독일 지하철도 수동으로 문을 여닫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기 손으로 열고 닫아야 한다는 뜻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자동이 편리한 건 두 말 하면 잔소리지만, 고장의 위험성이 더 높다. 수동문은 고장의 우려가 없기 때문에 이를 운용하기 위한 별도의 인력도 필요 없게 된다. 이야기를 좀 더 진전시켜보면, 그리되면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발생했던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처럼, 19세 수리공이 안전문에 끼어 죽는 사고 같은 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게 무조건 '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일자리'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보다 무조건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사회는 결국 '착취'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저 눈앞의 불편함을 다른 누군가에게로 전가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편함은 '고통'이 돼 우리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우리가 돈과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재벌 3세가 아닌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