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앞에서 1인 시위중인 어머니. 한겨울에 전주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늘 함께했던 어머니의 한은 언제 해결될까
고상만
어머니에게는 모두 3형제 아드님이 있었답니다. 그중에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한 아들이 막내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도 모르는 사이에 막내가 해군 부사관으로 지원 입대한 데에는 눈물 나는 사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막내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각별한 효자였다고 합니다. 다른 아들 역시 효자지만 막내는 더욱 그러했다고 합니다.
막내가 해군 부사관을 지원한 이유어머니는 전북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전북대 앞에서 맛있는 식당을 오래 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북대 학생 중에 내 밥 먹고 판검사 된 사람도 많고, 그렇게 성공한 학생들이 "어머니 밥이 그리웠다"며 찾아오기도 한다며 자랑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을 가장 많이 도와주던 아들, 바로 막내였다고 합니다.
그런 효심 깊었던 아들이 어느 날 엄마도 모르게 해군 부사관을 지원한 것입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가 막내를 책망했다고 합니다. 왜 고생스럽게 해군 부사관을 지원했냐는 것입니다. 그때 듣게 된 막내의 속내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엄마의 아픔이 되었다고 합니다.
형편이 어려워 자주 이사해야 하는 엄마를 보며 늘 가슴이 아팠다는 겁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집을 사 드리고 싶어 해군 부사관을 지원 입대했다는 막내. 그런 아들이 입대 후 33개월이 지나가던 어느 날, 군 복무 중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으니 이 어머니가 받은 충격은 어떠했을까요?
어느덧 그때로부터 만 21년이 지났건만, 다른 일은 나이가 들어 가물거리지만, 막내가 떠난 그날만은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1996년 3월 17일, 바로 그날입니다. 처음 군부대에서 어머니에게 연락이 올 때는 "교통사고로 아들이 크게 다쳤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정신없이 달려간 병원에서 어머니가 마주한 것은, 그러나 입원실에서 치료받는 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병원 냉동고 안에 안치된 막내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의혹투성이 아들의 죽음
그날부터 어머니는 억울했다고 합니다. 왜 교통사고가 아닌데 교통사고가 났다며 연락을 했는지, 그리고 기도 폐쇄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앞뒤 경위가 맞지 않는 여러 의혹으로 답답하기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황망하게 막내를 잃고 경황이 없던 그때,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로 막내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며 진정서를 내고 탄원도 했지만 돌아온 답은 늘 한결같았다고 합니다. '부대는 잘못이 없다'는 회피가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군 의문사 피해 유족 단체를 찾아가 회원이 되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와 집회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2014년 8월에 개최된 국방부 앞 항의집회에서도 어머니는 함께 했습니다. 군 복무 중 선임병의 집단 구타로 억울하게 생을 마친 윤 일병의 죽음을 누구보다 서글퍼 했던 어머니. 그리고 이 죽음에 무책임한 국방부의 행태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모든 군인의 죽음이 내 자식 같은 아픔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