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선짓국밥으로 속이 확 풀립니다.
전갑남
한겨울의 다른 이름을 동장군이라 부릅니다. 사람이 맞서 싸울 수 없을 만큼 위세를 부리는 겨울 한파를 의인화하여 부르는 말일 것입니다.
요 며칠 매서운 동장군이 엄습해왔습니다. 영하로 뚝 떨어진 날씨에다 바람까지 씽씽 붑니다. 체감 온도는 더욱 낮아졌습니다. 피부 속까지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파고듭니다. 한겨울 예행 연습을 이제야 끝내고, 본격적인 겨울 한복판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날이 하도 추워 바깥바람 쏘이기가 싫습니다.
예전 한파가 몰아쳐 아랫목 구들장 신세만 지고 있으면 아버지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놈아, 시한에 방안퉁수처럼 처박혀 있지 말고, 밖으로 싸돌아다녀! 마실이라도 다녀야지!"시한은 겨울을 뜻하고, 방안퉁수는 추위 때문에 문밖출입을 하지 않을 때 듣는 말입니다. 고향 사투리를 떠올리면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해장국으로 선짓국은 최고 아내는 한나절 내내 컴퓨터 앞에만 있는 내가 딱한 모양입니다.
"우리 해 나니까 자전거라도 탈까?""이 사람, 얼마나 추운데 자전거를 타!""아님, 이웃집에 마실이나 가시든지?"
오후 늦게 아내 등쌀에 마실을 갔습니다. 이웃집 아저씨는 친구라도 만난 듯 나를 반깁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꺼냅니다.
"우리 선짓국이나 먹으러 갈까? 마누라도 없고, 점심도 건너뛰고! 속이 출출하네!""아주머니 어디 가셨나 보네요. 선짓국 좋죠! 나도 뜨끈한 게 생각났는데…."아저씨는 혼자 밥 먹기도 그래서 점심을 거른 모양입니다. 밖에 나가 이른 저녁이나 먹자고 합니다. 나도 어제 과음을 한지라 선짓국 소리에 입맛이 다셔집니다.
아저씨와 나는 차를 몰고 국밥집을 찾아가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전 부친께서도 약주 많이 드셨나?""네, 막걸리를 짊어지고는 못 가도 뱃속에 채우고는 가신다고 하셨어요!""애주가였던 모양이시구먼.""그래서 어머니께서 막걸리가 집에서 떨어지지 않게 담가댔지요.""해장국으로 선짓국도 해드렸겠네.""해장국이 따로 있었나요? 따끈한 국으로 속 푸셨죠. 어쩌다 선짓국을 끓이시기도 하였지만…."장날에 우리 부모님은 푸줏간에 들르시곤 했습니다. 비싼 고기는 못 사고, 소 선지를 사셨습니다. 선지는 육고기에 비해 값이 무척 쌌습니다. 선짓국은 아버지 해장국으로도 최고였지만, 형제 많은 우리 집에선 모처럼 먹는 별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선짓국을 참 맛있게도 끓였습니다. 어머니 음식 솜씨는 동네에서도 알아주었습니다.
선짓국은 찬물에 선지를 담가 핏물을 빼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가마솥에 소금을 조금 넣어 물을 끓인 후 살짝 데칩니다. 데쳐서 덩얼덩얼 뭉쳐진 선지는 채반에 받쳐놓습니다. 선짓국에는 푹 삶아 놓은 무시래기가 꼭 들어갑니다. 집에서 기른 콩나물과 대파를 숭숭 썰어놓고, 된장을 풀고 집간장으로 간을 합니다.
어머니 손맛으로 가마솥 하나 선짓국을 끓이면 한겨울에 먹는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아버지께 큰 국대접으로 가득 담아드리면 "아! 시원하다. 속이 확 풀리네!"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나도 예전 어머니가 끓여주신 선짓국의 구수한 맛을 잊지 못해 해장국으로 선짓국을 즐겨 먹습니다.
김치와 소 내장이 들어간 색다른 맛의 선짓국국밥집에 도착하였습니다. 해 넘어가는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주차장에 차가 들어찼습니다. 매서운 날씨라 우리처럼 따뜻한 해장국이 생각난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