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방문한 반기문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3일 오전 귀국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을 찾아 참배한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바쁘다. 지난 12일 귀국한 그는 쉴 새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권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주말 사이 고향과 천안함기념관을 찾은 반 전 총장은 16일 경상남도 거제시를 거쳐 부산광역시를 찍고 17일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다. 같은 날 그는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도 만날 예정이다.
반 전 총장은 숨 돌릴 틈 없는 일정 속에 '친서민'과 '국민대통합'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국민들에게 구애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그의 귀국 후 처음 나온 여론조사(리얼미터 1월 9~13일 실시,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반 전 총장은 지지율 22.2%를 기록했다. 전주보다 겨우 0.7% 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시기상조일 수 있지만, 파괴력이 약하다. 넘어야 할 산들도 많다.
[과제①] 진보적 보수주의? 알쏭달쏭한 말, 불분명한 정체성반 전 총장의 귀국효과는 왜 미미할까. 첫 번째 이유는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12일 귀국길에 몇몇 언론사와 한 기내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진보적 보수"로 설명했다. 15일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를 찾아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등 안보를 강조한 반면 오는 17일 봉하마을과 팽목항,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는 등 야권에 다가가기 위한 일정도 세웠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보수를 넘어 중도와 진보까지 아우르겠다는 의지만 있을 뿐,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는 보이지 않는다. 개헌을 고리로 한 연대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도 반 전 총장은 말을 아끼고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16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아직 뚜렷한 전략을 못 세운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보수층은 박근혜 게이트 이후 사회가 급변하는 것 아니냐 하는 불안심리가 있는데 반 전 총장은 여전히 눈치 보는 것으로 비친다"며 "반면 진보 쪽은 이 사람이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신뢰할 만한 (반 전 총장의) 발자취가 없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의 지지세력이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문제도 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진보적 보수'라는 것은 중도외연을 넓혀보겠다는 판단일 텐데, 그게 가능하려면지지 기반이 알려지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반 전 총장 주변에 있는 사람이 누구건 옛 정치세력을 업고 있다는 점이 귀국 전부터 너무 명료하게 드러나 외연 확장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반기문 = 새로운 정치세력'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과제②] '인권·약자 보호' 반길 일인데... 보수층은 과연
핵심 지지층인 보수세력의 결집에도 변수가 하나 있다. 반 전 총장이 임기 동안 여러 번 강조해온 성소수자 인권 문제다.
보수층에게는 매우 민감한 이슈다. 이들의 중심에는 줄곧 성소수자 인권 보장에 반대해온 기독교계가 있다. 이미 데인 정치인들도 있다. 2014년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고 말한 박원순 서울시장, 지난해 선거운동 기간에 공격을 받았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사례다. 2013년에는 성소수자 차별금지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 자체가 무산되기도 했다.
반 전 총장 쪽에서도 기독교 표심을 의식한 듯한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12일 TV조선은 그의 45년 지기인 임덕규 전 의원이 "반 전 총장은 동성애 옹호론자가 아니라고 적극 해명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은 12일 귀국길에 자신의 '진보성'을 강조하며 성소수자 지지활동을 꼽았다.
"UN 임기를 소화하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권익 보호를 강조하자 러시아를 포함해 여러 회원국들이 반발했다. 심지어 반대 결의안을 채택하자는 움직임이 불거졌는데 더 많은 회원국이 저를 지지해 다행히 부결됐다(1월 12일 귀국행 비행기 기내 인터뷰)."보수성향 의원들은 이 발언에 약간씩 우려를 표했다. 천주교 신자인 수도권의 한 의원은 "(성소수자 문제는) 가톨릭이나 개신교쪽 표심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신교를 믿는 또 다른 의원은 "UN 사무총장으로 한 말씀 아니냐"며 "대선주자로서 변한 게 있다면 설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