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전 경남 양산 성전암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도식에서 어머니 정차순(85)씨가 아들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정민규
안양 어느 변두리 단칸 셋방, 힘겨운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가까이하기 위해 찾아갔던 선한 친구 박종철. 무릎을 맞대고 우리 삶의 미래를 함께 잠시 얘기했던 그때를 다시 생각하며...
1987년 1월 15일 한 석간신문, 전날 경찰의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쇼크사했다는 기사가 사회면 중간에 2단으로 짤막하게 걸렸다. 수백 명을 총칼로 학살하고 들어선 정권이었지만, 반독재 운동가들이 체포되면 권력기관들로부터 무자비하게 고문을 받는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인 시대였지만, 그래도 이 사건은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박종철의 죽음... 시민들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앳된 대학생의 시신이 너무도 시퍼렇게 폭력의 증거물이 되어 드러났다는 생생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거기서 시작된 의문과 폭로와 분노의 불길은 얼마나 커지고 어디서 끝날지 아무도 몰랐다. 이 사건도 여느 의문스런 죽음과 공공연한 고문 사건들처럼, 그렇게 짓뭉개고 넘어갈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몰랐다.
사람이 죽지 않을 정도만큼의 고통을 주는 고문을 하는 데 많은 경험을 쌓은 고문 전문가들. 물고문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욕조가 설치된 밀실. 그런 밀실들이 들어찬 서울 시내 한복판의 건물을 버젓이 공식적인 시설로 운영하는 경찰. 그 죽음은 우발적인 사고도 아니었고, 어디 뒤에 숨어 몰래 벌인 일탈도 아니었다.
이 거대한 폭력의 체제. 누가 그런 권력을 허락했던가? 이것은 박종철이라는 이름의 젊은이가, 발가벗겨진 몸뚱아리 하나로 그 거대한 악의 체제에 맞서, 결국에는 장엄한 죽음으로 그 치부를 우리 모두의 면전에 그대로 던져 보인 사건이었다.
용기있는 증언들이 진실을 하나하나 드러내었다. 우발적인 사고와 소수의 일탈로 묻어버리려던 추악한 은폐와 축소의 뒷모습까지도 폭로되었다. 알 만한 사람은 익히 추정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사건의 전말이 그렇게 하나씩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마다, 우리는 가슴을 찌르는 처절한 물음을 계속 마주해야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국가 권력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