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변호사> / 지은이 양지열 / 펴낸곳 현암사 / 2016년 12월 26일 / 값 16,800원
현암사
<그림 읽는 변호사>(지은이 양지열, 펴낸곳 현암사)는 기자 출신인 양지열 변호사가 그림에 드리워 있는 어떤 의미를 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그림으로 그려진 배경, 구도, 등장인물, 소모품, 색감, 보일 듯 말 듯 그려진 등장인물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함축돼 있는 의미들을 법이라는 잣대로 한 올 한 올 풀어갑니다.
무심한 얼굴에 이슬방울처럼 살짝 맺힌 표정하나, 지나가는 바람처럼 별다른 흔적 없이 그려진 음영에 드리운 의미까지도 판결문에 써진 토씨 하나를 다투듯 낱낱이 살피며 실정법과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벨기에의 수도 브루셀에서 서북쪽으로 9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도시, 브뤼주에 위치한 흐루닝헤Groeninge 미술관에 가보면 모두의 눈을 사로잡는 그림이 두 장 전시돼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아름다움보다는 그 잔혹함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모은다. 바로 헤라르트 다비트 Gerard David(1460∼1563)의 <캄비세스 왕의 재판>이다. 어째서 이렇게 잔혹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는지 알려면 우선 이 그림의 유래부터 살펴봐야 한다."(본문 246쪽)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 정복을 이룩하고, 에티오피아와 카르타고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거느린 페르시아 황제였습니다. 그런 황제가 이토록 잔인한 그림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어떤 의도와 유래, 그림에 담아 전하고자 했던 유지 등을 법이라는 잣대로 설명합니다.
두 장의 그림은 네 개의 사건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이야기를 연달아 보여줍니다. 첫 번째 그림은 재판관 시삼네스가 처마 밑에서 뇌물을 받는 장면이고, 두 번째 그림은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린 시삼네스가 체포되는 장면입니다.
세 번째 장면은 시삼네스가 처형되는 장면으로, 광장 중앙에 결박당한 채 누워있는 시삼네스를 집행인들이 칼을 들고 피부를 벗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상상만으로도 눈꺼풀이 떨릴 만큼 잔혹하기 그지없는 광경입니다.
끔찍할 만큼 잔혹하지만 부패한 법관에 가해지던 형벌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네 번째로 그려진 모습을 보면, 어느 법관이 시삼네스가 재판을 하던 바로 그 자리, 밝은 색 천이 덧씌워진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의자에 씌워진 밝은 색 천은 시삼네스를 처형하며 벗겨낸 가죽이고, 그 의자에 앉아 있는 법관은 어느 누구도 아닌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Otanes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살 거죽이 덧씌워진 의자에 앉아 있는 아들 모습은 부패한 공직자에게 내려진 처벌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혹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점이 떨릴 만큼 끔찍이도 잔인한 장면이지만 부패를 척결하고자 했던 캄비세스의 의지, 그림을 통해서라도 후세에 전하고자 했던 위대한 황제의 꼿꼿한 유지는 너무나도 확연합니다.
알쏭달쏭한 법, 생활 속 이야기로 풀어일반인들에게 법은 너무 어렵습니다. 애매모호합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도 있는 게 법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유전무죄와 무전유죄라는 말이 회자됩니다.
어쩔 수 없어 휘두른 주먹일지라도 정당범위의 범위를 다퉈야 하고, 성추행이냐 성폭력이냐를 놓고 시비를 가려야 합니다. 명예훼손과 모욕, 사업과 사기, 선물과 뇌물…, 이런 것 같은데 저런 것이라 하고, 처벌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무죄라고 하기도 합니다.
내연남인 변호사로부터 외제 차와 명품 백을 받은 여검사에게 사랑이라며 무죄 판결을 내리는 현실을 견주며 읽어주는 그림은 '부패한 공무원이 되고 싶다면 생명을 걸라'는 추상같은 경고입니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의 <옷을 벗은 마하>,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의 <바벨탑>, 독일 함부르크 박물관의 <배심원 앞의 프리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메두사호의 뗏목>, 헝가리 부다페스트 박물관의 <다이아나와 악타이온>, 독일 올덴부르크 아우구스테움의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등 세계적 명작에 스며있는 시대적 배경과 법리적 해석들이 덧칠해진 유색페인트 두께만큼이나 두껍고, 표시나지 않는 덧칠 솜씨만큼이나 조화로운 설명입니다.
"승객은 배에 오르는 순간부터 선장에게 목숨을 맡긴다. 제아무리 커다란 배라고 해도 바다와 그 사이에 있는 것은 오로지 얇은 철판뿐이다. 승객들은 글자 그대로 선장에게 목숨을 맡겨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에게 도망치라는 퇴선 명령을 하지도 않고 저 혼자 나왔다. 살인죄를 면할 수 없다."(본문 75쪽)세월호 사고를 연상케 하는 <메두사호의 뗏목>, 그런 그림을 그리게 한 선장에게 내려져야 할 사법적 책임은 당연히 '살인죄'를 물어야 할 만큼 무겁다는 설명입니다.
명화에 드리워 있는 법을 새기다 보면 법조문 하나하나까지는 아닐지라도 법이라는 울타리에 담긴 의미, 귀걸이가 되기도 하고 코걸이가 되기도 하는 법을 더듬더듬 더듬어 가늠할 수 있는 일상생활 속 법공부가 될 거라 기대됩니다.
그림 읽는 변호사 - 양지열 변호사의 그림 속 법 이야기
양지열 지음,
현암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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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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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채로 피부 벗기는 그림, 황제의 부패 척결 의지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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