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광화문 광장에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짓기 시작했다.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인해 공공 극장을 빼앗기고 다시 그 공공극장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16일부터는 '광화문 극장 블랙텐트'서 공연이 열린다. 이날 극장을 제작하는 작업은 오후 5시가 넘어서 끝났다.
유지영
지난 10일 광장극장 블랙텐트가 임시 공공극장을 표방하며 광화문 광장 텐트촌에 문을 열었다. 이는 최근 드러난 '블랙리스트'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 검열 사태에 항의하는 한편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운영하는 국·공립극장들이 방기해 왔던 극장의 공공성 문제를 본격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한국사회의 적폐는 그저 이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대안을 만들어 갈 때 비로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연극인들은 그저 예술 검열과 블랙리스트를 비판하는데 머물지 않고 박근혜 정부가 운영했던 국·공립극장들이 그동안 수행해온 기획·제작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수정하기 위한 청사진을 그릴 필요가 있다.
최근 드러난 '블랙리스트' 작성 근거는 크게 보면 문재인·박원순 등 야당 후보 지지와 세월호 진실 규명에 대한 요구였다.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정치적 의사 결정의 자유를 부정하고 부당하게 시민권을 제한한 것이다. 박영수 특검은 지난 1월 9일 블랙리스트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중대 범죄로 규정짓고 주요 피의자를 구속해서 수사하기로 하고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에 대한 구속 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함께 블랙리스트 작성의 주모자로 지목되었지만 그동안 이를 부정해왔던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같은 날 국정 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호된 질타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했다. 조윤선 장관은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헌법상 탄핵 사유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헌법 제65조에 따라 장관에 대한 탄핵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1 발의에 국회재적의원 과반수만 찬성하면 권한을 정지시킬 수 있다. 조윤선 장관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하루 빨리 자진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계속해서 버틴다면 국회가 탄핵해서라도 직무를 정지시켜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김기춘, 조윤선, 정관주 등 블랙리스트 작성 및 이를 근거로 한 검열 사건에 책임 있는 전·현직 고위공무원들은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하위직 공무원들이라고 하더라도 예외 없이 개별적 검토를 통해 사법적 처리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했던 창작산실 지원 사업에서 박근형 연출가에게 지원 포기를 강요하고 포기 각서까지 받아낸 뒤 이를 근거로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에 극단의 아이디로 접속하여 포기 신청서를 접수한 공직자들도 전자기록위작·변작죄로 처벌받아야 한다.
자신들이 기획한 공연에서 '수학여행'과 '노스페이스'라는 단어가 등장하자 공연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관객이 보는 앞에서 공연을 중단시켰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장과 문화사업부장도 업무방해죄 여부에 대하여 사법적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광장극장블랙텐트를 광화문 광장에 임시 공공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것은 블랙리스트와 예술 검열에 항의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블랙리스트 및 예술 검열 사태는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극장 특히 국·공립극장의 공공성에 대해서 기초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먼저 박근혜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극단과 국립극장 등 국·공립극장에 대하여 그동안 문체부로부터 블랙리스트가 내려왔는지, 내려왔다면 그동안 어떻게 대처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기획·제작단계에서 배제행위가 있었는지 공개적으로 묻고 성실한 답변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동안 이러한 검열 행위가 있었다면 국·공립극장들은 서둘러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설사 문체부로부터 국·공립극장에 내려온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예술 검열 문제에 대해서 국·공립극장이 책임질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극장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책임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