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강원도 소초 노지에서 캐온 겨울냉이를 다듬고 있다.
김민수
지난 월요일(9일)은 봄날처럼 날씨가 따스해서 바깥나들이 하기가 좋은 날이었다.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에 사는 작은 누님으로부터 지난가을 담갔던 김장 김치가 남아돈다며 김치가 무르기 전에 가져다가 만두 속이라도 해서 먹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새로 개통된 광주·원주 간 고속도로 덕분에 30분은 앞당겨 도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 삶에는 '빠름'이라는 편리성이 너무도 깊이 들어와 있고, 그것은 '천천히'와 '느릿느릿'이 가진 미덕을 은폐한다. 신자유주의는 천천히, 느릿느릿의 미덕뿐 아니라 '텅 빈 충만'과 같은 동양적인 것들, 심지어는 죽음과 생조차도 철저하게 은폐시킴으로 현대인들이 생명의 존엄성을 느낄 겨를이 없이 만든다. 그리하여, 기꺼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인간을 희생시키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죽음과 삶의 경험은 공동체적인 차원으로 이뤄졌다. 장례식을 통해 죽음을 보고, 아이들이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생사의 문제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산야를 돌아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었으며, 먹거리를 자연에서 얻는 경험을 통해서 감사하는 마음과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됨을 터득했다. 그런 환경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을 키워냈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은 이제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면, 반듯한 매장에 깨끗하게 포장되어 진열된 것이 아니면 먹기를 거부한다. 자본은 인간다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은폐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