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위더스필름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라는 책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알고 보니 이 책은 교육학에서 고전의 반열에 드는 책이었다. 가령, 서울대 조흥식 교수(서울대 사회복지학과)가 쓴 서평을 보면, 조 교수는 "이러한 절망의 때에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영문판과의 비밀스런 만남은 학문을 통한 희망의 길을 찾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서울대저널,
프레이리의『페다고지』가 삶에 주는 무게)
국립 서울대 교수가 읽고서 학문을 통한 희망의 길을 찾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토로한 책이 한편에서는 이적도서란다. 더 웃기는 것이 뭐냐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책은 1995년, 2002년, 2009년, 2012년에도 같은 제목으로 계속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얼마나 대단한 책이면 계속 새로운 책이 나올까? 그러면서도 이 책을 공안당국은 이적표현물이라고 한다. 도대체 이런 모순과 부조화를 어찌할꼬? 그러고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겠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검찰, '이적목적' 증명할 수 있나?이 두 책을 포함하여 이번 영장청구서 전반의 문제를 살펴보자. 몇 가지로 나누어 살핀다.
첫째, 이 사건에서 공안검찰과 경찰이 문제 삼은 표현물들은 대부분 1980년대 전두환·노태우 군부독재정권 시절의 이적의 잣대, 즉 1991. 5. 개정 이전 국가보안법 7조의 잣대로만 이적시할 수 있는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1991년 개정 국가보안법의 해석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실질적 위험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영장청구서 별지의 오른편에 있는 '판결문 번호'라는 란의 사건번호들을 보면, 대개가 1980년대 또는 1990년대의 법원 사건번호를 병기해 두고 있었다.
둘째, 1990년대로부터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비록 달팽이 발걸음처럼 느리기는 해도 우리 법원의 이적표현물에 대한 기준과 잣대도 상당한 수준으로 바뀌었는데, 그것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성숙도와 시민역량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특히 1991년 구소련의 몰락과 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룩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착 이래 우리 사회도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에 대하여 사실상 무제한의 해금상태에 이르렀고, 정치적으로도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등 진보정당들이 합법적 시민권을 얻어 국민들에게 정치적 지지를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하고,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하여 복수노조의 허용이 합법화되었고, 이 시기 전교조도 합법화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법원 또한 국가보안법 제7조에서 이적표현물의 범위를 좁히고 이적 목적도 엄격하게 판단하여 적지 않은 무죄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대략 2008년 이후 사건들만 하여도 산청간디학교 최00 교사 사건(창원지법 진주지원 2008고단705), 공산당 선언 무죄 판결(국방부 고등군사법원 2011노258), 부산 통일사 사건 무죄판결(부산지법 2012고단2566), 평통사 사건 무죄판결(인천지법 2013고단 953), 노동해방실천연대 준비위 사건(서울중앙지법 2012고합709), 안동 전교조, 평통사 소속 회원 사건(대구지법 안동지원 2013고단280, 281) 등이 있다.
그 이전에도 이장희 교수의 <나는야 통일1세대> 책자, <변증법적 유물론> 책자 등이 이적표현물이 아니라고 판시한 바도 있다. 이러한 일련의 무죄판결들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성숙도와 시민역량의 성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이 사안과 유사한 노동해방실천연대 준비위 사건은, 이른바 PD계열에서 사회주의 변혁을 주창해 온 사람들에 대한 구속영장청구가 기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재판에서 전부 무죄판결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런 판결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시계를 30년 전으로 돌려 검찰은 이러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은 이 영장청구를 발부했다. 이는 그간의 우리 사회의 사상적 성숙과 시민의 역량을 모조리 부인하는 태도와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