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제3단계에 진입한 지 얼마 뒤인 1950년 부산 시내에 상륙한 미군. 부산시 서구 부민동의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트럼프의 할아버지는 제2단계로 접어들기 직전에 미국에 정착하고 트럼프 본인은 3단계가 개시된 직후에 미국에서 출생했다. 이 점만 놓고 보면, 이 집안은 미국 대외팽창과 흐름을 함께한 집안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성장하고 돈을 버는 동안에 미국의 국력은 많이 쇠약해졌다. 과거의 몽골제국은 기본적으로 서쪽을 향한 영향력 팽창에 큰 비중을 둔 데 반해, 미합중국은 서쪽과 동쪽에 비슷한 비중을 두다 보니 금세 지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 패전과 1969년 닉슨 독트린(아시아·태평양 문제에 가급적 개입 않겠다는 선언) 이후로 현저하게 약해졌다. 그 후로도 세계 제국의 위상은 여전히 유지했지만, 예전보다 현저히 약해진 탓에 지금은 중동 지역을 상대하기에도 숨이 벅찰 정도다. 그래서 지금의 미국은 제3단계를 접고 제4단계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회귀'를 선택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아직은 제3단계이지만, 조만간 제4단계 선택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기운은 트럼프한테서도 감지된다. 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라며 그때처럼 '위대한 미국'을 건설하겠노라고 큰소리치지만, 정작 그가 지향하는 것은 과거의 먼로주의와 비슷한 것이다. 먼로주의와 꼭 같지는 않지만, 미국대륙 바깥으로의 영향력 팽창을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이 점은 대선 유세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사담 후세인이 지금 이라크에 있었다면 세계가 더 안전했을 것"이라면서 미국의 이라크전쟁 개전을 비판했다. 또 "시리아에 IS도 있고 아사드 대통령도 있는데, 왜 둘이 그냥 싸우게 놔두지 않느냐"며 "(둘이서 싸우도록 한 뒤에) 우리는 나머지 이익만 챙기면 된다"고 말했다.
또 2016년 4월에 있었던 위스콘신주 유세에서는 "북한과 일본이 싸우면 끔찍한 일이겠지만, 그들이 하겠다면 그들끼리 하는 것"이라면서 "행운을 빈다. 알아서 잘 즐기라"고 말했다. 동맹국인 일본이 북한과 싸운다 해도 중립자적 입장을 취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발언들에서 드러나듯이, 트럼프는 제1단계 때의 먼로주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겉으로는 전 세계를 상대로 당장에라도 한판 벌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현재 경제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영향력 팽창을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국가전략으로 공고해지면, 그때부터 미국 역사는 제4단계 '도로 미국 땅으로'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트럼프와 미국은 영향력 팽창이 아니라 영향력 축소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 강남에서 일부 한국인들이 성조기를 흔들어댄다 해도 한국을 도울 수 없는 게 미국의 처지다. 한국에서 휘날리는 성조기를 보며 잠시 마음이 짠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미국은 행동에 나설 만한 형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맞불집회에서 성조기를 흔들 바에야, 차라리 일장기를 흔드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베 신조 총리는 현재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 이전에 일본의 대외팽창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성황리에 치를 계획을 품고 있다. 아베 신조 같으면, 서울 도심에서 일장기가 휘날리면, 마음이 감동해서 행동을 고려할 가능성이 아주 조금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는 아니다. 트럼프와 미국은 지금 갖고 있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간 벌여놓은 일들을 정리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래서 맞불집회를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다. 그런 트럼프와 미국에 심적 부담만 안기는 것은 동맹국 국민들이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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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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