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홍명사 산문(일주문) 입구는 조촐하다
이윤옥
"막부정권이 끝나고 명치정부가 들어서면서 홍명사도 위기를 맞았습니다. 주인(朱印, 절의 공식적인 도장으로 국가의 옥새 같은 것)의 몰수와 함께 절의 재산 등을 모두 몰수 당해 명치 중반기에는 무주지의 절이 되어버렸지요. 그 무렵 절에서 내려오던 사보(寺寶)와 주지의 계보(系譜) 등 중요한 것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부주지 스님은 홍명사가 명치때 심한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용케 행기스님이 만든 11면관세음보살상 만은 살아남았다. 소화4년(1929)에 들어서서 마을 사람들이 홍명사 주변 상권 부흥을 위해 힘을 모은 덕택에 홍명사도 간신히 살아났다. 마침 철도들이 새롭게 들어서는 시기여서 홍명사역이 생기는 바람에 절 부흥에 더욱 힘을 받게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나라시대의 고승(高僧)이자 명승(名僧)인 행기스님(行基, 교기, 668~749)을 부르는 호칭은 다양하다.
<속일본기, 續日本紀, 쇼쿠니혼기)>에 나오는 행기스님에 관한 호칭을 살펴보면,
요로원년(養老 元年)(717) 4월조 : 소승교행기(小僧行基)
덴표(天平) 3 (731) 8월조 : 행기법사(行基法師)
덴표(天平) 17(745) 정월조 : 대승정(大僧正)
덴표쇼호원년(天平勝寶元年) (749) 2월조 :행기보살(行基菩薩) 등이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교기상(ぎょうぎさん) 곧 '행기님' 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가 '부처님'이라고 부르듯 말이다. 행기스님은 호칭의 변천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나 일평생 이타행(利他行, 남에게 공덕과 이익을 베풀어주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실천한 분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그가 남긴 뚜렷한 족적만 봐도 익히 알 수 있다. 일본 전역에 49곳의 사원을 짓고 제방 15곳, 항구 2곳, 다리 6곳, 빈곤자를 위한 숙박시설 9개 등을 설립한 것이 행기스님의 공적이다. 그 옛날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에 말이다.
행기스님에 관한 전승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의 것으로 일본최초의 불교설화집인 9세기에 나온『일본영이기, (日本靈異記, 니혼료이키)』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때 행기라는 사미승이 있었다. 속성은 고시(越史 또는 高志)로 에치고지방(越後國, 현, 니가타현) 비키군(頸城郡)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이즈미지방(和泉國, 현 오사카) 오도리군(大鳥郡)사람으로 하치다구스시(蜂田藥師)였다. 행기는 속세를 떠나 욕망을 멀리하고 불도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며 미혹되어 헤매는 자들을 교화시켰다. 사람됨이 총명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이치에 대해 잘 알았다. 행기의 높은 깨달음은 보살의 경지에 달하였으나 그것은 안에 감추고 겉으로는 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쇼무천황은 특히 그의 위엄 있는 덕에 감화되어 그를 존중하고 공경하였다. 당시 사람들도 그를 공경하여 보살이라 칭송하였다. <時有沙彌行基。俗姓越史也。越後國頸城郡人也。母-和泉國大鳥郡人、蜂田藥師也。捨俗離欲、弘法化迷。器宇聰敏、自然生知。內密菩薩儀、外現聲聞形。聖武天皇、感於威德故、重信之。時人欽貴美稱菩薩。>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중권 7화)"행기스님이 고시씨족 출신이라고 했는데 고시씨족은 백제국왕의 후손(釋行基世姓高志氏。泉大鳥郡人。百濟國王之胤也)을 말한다. 워낙 나라시대의 고승이기에 행기스님에 관한 자료는 일본 내에 풍부하다.
문제는 행기스님의 아버지가 백제출신이라는 점이고 어머니 또한 백제에서 건너온 도래인계의 약사 (渡来人系 蜂田薬師, 일본세계대백과사전(世界大百科事典)) 집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행기스님은 '백제인 행기' 스님이 맞다. 하지만 기자는 백제계라고 이 글에서는 쓰겠다.
"어머나. 행기님(행기스님)이 백제인이었어요? 세상에 세상에. 저는 일본인인줄 알았어요.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거든요."홍명사 신도인 올해 78살의 도미오카 사치코(富岡幸子)씨는 기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도미오카 씨는 올해도 신년 참배를 위해 절에 왔으며 마침 법당 안에는 곧 있을 신년 법회를 위한 50석 규모의 법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의 말에 흥미를 보인 도미오카 씨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기자도 2시부터 진행된 2017년 신년 법회에 참석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신년법회에는 반야심경을 비롯한 숱한 경전 독송을 거쳐 절정은 코마다키(こま焚き)였다. 주지스님이 법당 안에 불을 피우고 나쁜 액을 몰아내는 의식을 거행 한 뒤 신도들이 연기를 쪼이는 의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