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 서울 지하철 종각역 북쪽.
김종성
민씨 정권 전복시킨 시민군, 스스로 군대 해체김장손을 비롯한 시민군 지도부가 운현궁을 방문해 대원군을 만나는 장면이 구한말의 정치 비화집인 황현의 <매천야록>에 묘사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대원군은 호통을 치며 시민군을 내쫓는 척하다가 지도부 핵심 몇 명을 은밀히 불러들였다. 대원군이 일종의 '밀당'을 했던 것이다.
은밀한 회담에서 대원군은 시민군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그 직후의 사건 전개를 볼 때, 지시 사항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씨 일파와 주요 관청들을 좀 더 확실히 제압한 다음에, 내일 나를 호위하고 창덕궁에 들어가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다음 날인 24일, 대원군은 시민군 수백 명의 호위를 받고 창덕궁에 들어가 고종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정권을 차지했다.
그런데 정권을 잡은 그 순간, 대원군은 시민군의 존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들 덕분에 정권을 잡은 것은 고맙지만, 그냥 두면 혁명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기존 여당인 민씨 세력은 물론이고 자기 쪽도 안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민군을 무력화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대원군은 명성황후에 대한 시민군의 분노가 대단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실제로 시민군은 명성황후의 신병을 확보해서 끝을 내고자 했다. 이런 대중의 심리를 활용해서 대원군은 "중전이 오늘 죽었다"고 국상을 선포해버렸다. 중전은 이미 궁궐을 빠져나가 충주로 도주한 뒤였다. 그래서 중전의 시신도 확인하지 못했으면서 서둘러 국상을 선포해버린 것이다.
대원군이 이렇게 한 것은 시민군의 분노를 달래주고 그들을 귀가시키기 위해서였다. "그 여인이 죽었으니, 이제 된 것 아니냐?"는 식으로 시민군을 해체하려 한 것이다. 대원군은 속으로는 '너희의 역할은 다 끝났으니 이제는 촛불을 끄고 돌아가라'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시민군은 공공의 적인 중전이 죽고 고종의 왕권이 정지됐다는 점에 만족하며 대원군의 해산 제안을 쉽게 받아들였다.
이로써 시민군은 자진 해산했고, 정권은 대원군의 독차지가 되었다.
이것은 시민군과 함께 대궐을 장악한 그 혼란한 와중에도 머리를 수없이 굴린 대원군의 작품이었다. 1863년부터 10년간 고종을 대신해 임금 역할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1882년 당시의 대원군(당시 63세)은 이미 정치 9단이었다. 이처럼 닳을 대로 닳은 대원군과 손을 잡은 결과로, 시민군이 민씨 정권을 전복시켜 놓고도 자신들의 군대를 스스로 해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