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루이 종루가 들어선 자리가 전방후원분으로 하나의 동산을 이루고 있다
이윤옥
스님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은 모두 스승인 호소야세키치(細谷淸吉)의 <고대읍락정관음영장(古代邑樂町觀音靈場)>이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다면서 책 한 권을 선물했다. 호소야세키치 선생의 책 22쪽에서 24쪽에는 <나가라씨와 광은사(長柄氏と光恩寺)> 편이 있는데 이곳에 혜관스님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일본서기>에 보면 추고왕 33년(625)에 고구려에서 혜관이 건너왔다. 혜관은 수나라에서 삼론종의 대가인 가상대사에게 삼론을 익히고 일본에 와서 삼론의 개조가 되었다. 나라의 원흥사(元興寺, 간고지)에서 주석하고 있을 때 국가에 큰가뭄이 들어 조정에서 혜관스님에게 기우제를 청했다. 혜관스님은 푸른 옷을 입고 삼론을 강설하였는데 돌연 큰비가 내렸다. 조정에서는 매우 기뻐하며 혜관을 승정으로 삼았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승정 기록이다. 혜관은 627년에 무츠지방(陸奥国, 현재의 아오모리 일대)에서 괴물퇴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렵 관동으로 와서 광은사(光恩寺,고온지), 수택사(미즈사와데라, 水澤寺), 근본사(根本寺, 곤본지) 도량을 열었다."호소야세키치 선생의 해설은 명쾌했다. 이러한 기록은 호소야 선생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정사인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 기록된 혜관승정에 관한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다.
면담 시간을 30분 정도로 잡고 오후 3시에 만난 주지스님과의 대화는 고구려 혜관스님의 이야기에 빠진 주지스님의 설명에 그만 예정시간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긴 4시 반이 되어서야 끝났다. 그러나 대담만 끝났을 뿐 스님은 한 시간 반 동안 들려준 이야기가 적혀 있는 각종 자료를 복사해주겠다며 노구를 이끌고 복사실로 향했다.
스님이 복사물을 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기자는 동석한 치요다쵸 구청 공무원인 고바야시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고바야시씨는 치요다쵸(千代田町) 경제과상공통계계(經濟課商工統計係) 직원이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광은사로 가는 교통이 아주 불편한 관계로 주지스님이 고바야시씨에게 기자를 부탁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본으로 떠나기 전 광은사 주지의 부탁을 받았다는 고바야시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광은사로 가는 교통편을 제공하겠다"라는 메일을 받았으나 길 찾기엔 자신이 있었을 뿐 아니라 공연히 신세지기가 싫어 "괜찮다, 혼자 찾아가겠다"라는 말로 정중히 고마움만 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뿔사! 광은사로 떠나기 전날 오오타(太田)의 숙소에서 종업원에게 광은사 길을 물으니 버스가 드물게 다니는 곳이라 2시간 가까이 걷거나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택시도 흔치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듣고서야 주지스님의 친절한 배려가 생각났다. 그러나 기자를 돕겠다는 구청 직원에게 이미 괜찮다는 메일을 보내 둔 터였기에 나는 몹시 난처했다.
길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2시간 가까이 걷는다는 것도 그렇고 콜택시를 부를 형편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낙담을 하면서 혹시 싶어 그날 밤 방으로 돌아와 메일을 보니 한통의 메일이 다시 와 있었다. 구청직원 고바야시씨 였다. "아무래도 광은사 가시는 길이 걱정되어 제가 호텔로 모시러 가겠습니다"라는 메일이 왔었던 것이다. 너무나 기뻤다.
여러번의 화재로 전각이 소실된 광은사는 명치 때 건물이지만 큰 나무들이 곳곳에 있어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