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원전 건설 현장앞쪽의 두 개의 둥근 건물이 신고리 1, 2호기 원자로 격납건물이다.
멀리 보이는 것이 당시 건설 중이던 신고리 3호기이고 그 사이 부지가 신고리 5, 6호기가 건설될 부지다.
양이원영
재생에너지는 꼴찌, 핵발전은 '폭풍 증가'단위면적당 핵발전소(원전) 용량이 세계 최대이고 핵폐기물 양도 세계 최대다. 석탄발전마저도 세계에서 가장 밀집한 나라다. 발전설비가 너무 많아도 문제인데 예상보다 전력소비가 늘지 않아 가동하지 않는 발전소에 지급하는 비용으로 낭비가 심하다.
2015년 한 해 동안 한전이 각 발전사에 지급한 도매전력요금의 약 15%(6조2000억 원)는 실제 발전량과 무관한 용량요금(4조7522억 원)이나 기타정산금(1조4619억 원)이다. 이런 비용이 지난해만 6조2000억 원이었다는 소식이다.
전기설비가 남아도는데도 올해 내년 사이 석탄발전은 10기가 준공예정이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안전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부산·울산 대도시 인근에 9번째, 10번째 원전인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허가를 내줬다. 예상치 못한 경주 지진이 역대 계기지진기록을 갱신하면서 활성단층이 밀집한 한반도 동남부 일대는 더 이상 지진안전지대가 아님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내진여유도 1% 밖에 없는 중수로 원전인 월성원전 1~4호기는 내진 보강을 하지도 못한 채, 부지 지진계도 없이 원자력안전위원장 직권으로 재가동에 들어갔다.
공공성의 기준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정부라면 신규원전을 취소하고 노후원전을 폐쇄하면서 재생에너지 산업, 전력효율화산업을 통해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정부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난 9년은 비상식·비정상·비합리의 연속이었다. 공적관계가 아닌 비선실세로 대표되는 사적관계와 정경유착이 빚은 결과는 퇴행하는 전력정책, 원전 확대정책으로 나타났다. 결국, 시민들은 원전사고 불안에 떨어야 하고 처리 못하는 핵폐기물만 쌓여나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이어진 원전 확대정책을 충실히 따랐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을 강조하는가 싶었지만 역시나 결론은 원전 확대정책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공약에서 '안전우선주의에 입각한 원전 이용'을 제시하면서 '국민 여론을 수렴, 향후 20년간의 전원 믹스(Mix)를 원점에서 재설정하며, 추가로 계획하고 있는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 하에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수위원회 구성에서부터 과학분야 인수위원을 원자핵공학과 교수로 임명하고 박근혜 당선인이 미국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핵마피아의 염원인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를 주장했다. 그리고 전 세계 원자력국 중에서 유일하게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원자력진흥위원회와 같이 국무총리실에 뒀다.
국무총리는 원자력진흥위원장이다. 핵발전소를 지원하는 국제기구인 IAEA조차도 규제기관은 진흥부서와 독립적인 위상을 유지해야한다고 권고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36개 원자력국가 중 유일하게 이 권고사항을 지키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자력확대정책을 충실히 지원했다. 지진위험에도 활성단층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30~40년 전 안전수준으로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을 결정했다. 2015년 2월 27일 오전 1시까지 무리하게 회의를 끌어가던 원자력안전위원들이 급기야 야당 추천위원들의 퇴장에도 불구하고 표결에 들어간 배경이 청와대의 지시라는 얘기는 1년이 지나서야 재판장에 출석한 전 원자력안전위원의 증언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고 김영한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 6개월 전에 이미 월성1호기 수명연장이 결정된 정황이 발견됐다.
지난 2016년 6월 23일에는 세계 최대 핵단지가 되는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성급히 허가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시설이지만 안전성 평가에 문제가 있어 재고해야 하는 계획이었다. 전력수요증가가 둔화되면서 발전설비도 남아 필요 없는 시설이었다. 게다가 반경 30km 내에 400만 명의 인구가 밀집해 있는데 세계 최대인 9번째, 10번째 원전 건설을 허가한 것이다.
김영한 업무수첩에 드러난 원전 확대의 배후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동시에 한 부지 내 여러 기의 원전에서 사고 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안전성평가는 필수 사항이 됐다. 하지만 10기의 원전을 한 부지 내에 두면서 이런 '다수호기 안전성평가'는 아예 없었다. 활성단층으로 의심될 수 있는 단층이 신고리 5호기 원자로 격납건물 바로 아래에 지나가는 것으로 확인되자 건물을 50m 옆으로 옮기는 것으로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믿기 어려운 주장도 제시됐다.
사용후핵연료를 물 속에 보관하는 임시저장의 위험성 역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전세계 원자력계에서 제기된 것이고 국내 원자력학회 보고서에서도 지적되었는데 두 배 저장 용량의 60년짜리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고도 같이 허가해 주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계약은 원자력안전위원회 허가 1년 전인 2015년 6월에 삼성물산 콘소시엄으로 선정됐다. 신고리 5·6호기 총 투입비용이 8조6000억 원가량인데 이 중 토목 건설비용은 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을 최순실 일가에 투자한 삼성에게는 신고리 5·6호기 건설도 투자의 대가일 수 있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에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로 보이는 영덕과 삼척 신규원전 추진과정에서의 탄압 정황도 확인됐다. <민중의 소리>에 따르면 2014년 10월 9일 삼척 신규원전 찬반주민투표 직후(자체 선거인명부 기준 투표율 68%, 유권자기준 투표율 47%, 85% 반대)인 10일의 기록에는 '삼척 원전관련 주민투표' 문구 하에 '영덕 확산조짐' '선제적 대응' '(원전) 기필코 달성' '지역언론 설득' 등의 메모가 있고 10월 23일에는 '삼척원전 반대 여론이 영덕에 전이 현상이 없도록 사전 노력이 요구'된다는 김기춘 전 실장의 지시사항으로 보이는 메모가 발견됐다.
11월 21일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가 조석 당시 한수원 사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를 대동하고 영덕군의장과 군수를 비롯한 주민들을 만나 영덕원전에 따른 경제적 지원을 제시하면서 원전 추진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의 11월 14일 기록에는 '삼척시장 허위사실유포 기소예정' 문구와 함께 '직권남용 사건도 (수사) 중'이라는 문구도 발견됐다. 삼척원전반대 공약을 전면에 건 김양호 삼척시장이 2014년 6월 당선된 이후 상대편 후보에 의해 고발된 '허위사실 유포혐의'는 담당 경찰의 수사 결과 무혐의 결정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업무수첩 기록의 12일 뒤에 11월 26일 춘천지방검창청 강릉지청은 김양호 시장을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재판에 넘겼다. 고 김영한 수석의 업무수첩대로 진행된 것이다. 김양호 시장은 2015년 8월 12일 최종 무죄 확정됐다. 그런데 또다시 업무수첩대로 강릉지청은 지난 2016년 1월 8일에 김양호 시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2016년 10월 6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은 이 사건에 대해서도 무죄판결을 내렸다.
2015년 11월 11일 시행된 영덕 주민투표에 대한 도를 넘는 정부의 방해 역시 고 김영한 업무수첩에 충실한 결과다.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의 모금과 자원봉사로 추진된 영덕신규원전 찬반 주민투표에 대해서 안전행정부장관과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명의로 집집마다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말라는 서신이 배달됐고, 동네마다 버스정류장마다 벽보가 붙여졌다.
영덕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지지율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게(87.11%) 나온 곳이다. 여당 성향이 강하고 보수적인 이곳 영덕군민들의 정서를 이용해서 진행 중인 주민투표를 '불법'투표, '나쁜'투표, '가짜'투표라고 선전했다. 심지어 '원전건설 반대투표는 박근혜정부 심판'이라며 주민투표를 추진하는 세력은 '붉은 좌파 세력'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영덕군민들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