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째 필리버스터... 허리통증 참는 은수미 의원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월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반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도중 손으로 허리를 짚어가며 통증을 참고 있다.
남소연
2월 23일정의화 국회의장이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했다. 현행 국회법상 직권상정은 여야 교섭단체 사이에 합의가 있거나,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만 가능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병호 국정원장을 통해 당시 상황이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08명이 테러방지법의 표결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 무제한토론을 신청했다. 1964년 신민당 김대중 의원이 김준연 의원의 구속 동의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진행했던 필리버스터 이후,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52년만에 벌어진 필리버스터였다.
당시 김대중 의원이 세웠던 5시간 19분의 기록은 첫 타자였던 김광진 의원이 5시간 33분이라는 기록으로 깨고 출발했다. 다음으로는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이 올라왔고, 그 다음으로 은수미 의원이 올라와 10시간 18분을 발언하면서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다음으로는 필리버스터가 새누리당의 공약사항이었음을 지적해 새누리당의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신경민 의원, 공천에 탈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올라와 5시간 4분의 연설을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강기정 의원, 5시간 17분의 연설을 마치고 내려와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서기호 의원, SNS 여론을 많이 전달한 김용익 의원, 박정희 시대의 노동정책에 항의하다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의원, 11시간 39분을 발언하면서 다시 최장 기록을 세운 정청래 의원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후 필리버스터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 종료되었다. 필리버스터 종료를 두고 당내에서는 심한 잡음이 일었고, 그 과정에서 박영선 의원 등의 발언은 큰 논란을 낳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종걸 원내대표의 12시간 31분 최장 기록을 남기고 3월 2일 오후 7시 30분,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는 종료되었다.
대한민국 국회는 192시간 27분이라는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웠다. 2위 기록인 58시간과는 몇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숫자다. 3월 2일 통과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은 현재까지 시행 중에 있다. 국정원은 안보를 이유로,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설정한 '테러 위험 인물'을 합법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3월 9일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이 있었다. 이날을 시작으로 총 5번기의 대국이 있었고, 이 가운데 제 4국을 제외하고 4번의 대국에서 모두 알파고가 승리했다. 인간이 컴퓨터에 대항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보드게임이었던 바둑마저 이제 챔피언의 자리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앉게 되었다.
알파고의 승리를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술의 발전이 더욱 필요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인공지능 기술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의 인간에 대한 우위는 보다 확실해졌다.
기술은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인간은 그 기술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다. 우리 인류 공동체는, 그 빠르게 성장한 기술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 기술은 우리에게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명확하게 확신할 수 없다. 왜인지 공포감이 엄습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술의 발달을 막아세울 순 없다.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막는 것이 옳은 방향도 아니다. 그럴수록 기술을 다루는 방향에 대한 수준 높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 기술은 인류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다.
알파고가 4국에서 패배한 뒤, 알파고 프로그램의 모니터에는 이런 문구가 떴다.
"Alphago resign:The result "W+Resign" was added to the game information."
("알파고 패배 기록이 게임 정보에 추가되었습니다.")3월 20일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의 방문이었다.
미국의 턱밑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던 쿠바. 그래서 언제나 미국의 최전방 충돌구역이 되었던 쿠바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때는 핵전쟁의 가능성까지 공공연하게 떠돌았었다. 하지만 교황의 중재로 2015년 교황의 중재를 통해 국교를 정상화한데 이어, 올해 3월 20일에는 미국 대통령의 공식 방문까지 받게 되었다.
어지러운 세상에도, 화해와 희망의 징표는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