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양심신 승가사는 해발 580미터 산중턱에 위치하여 보현봉과 향로봉을 좌청룡, 우백호로 삼고 인왕과 북악을 주산으로 삼아 한양 도성을 굽어보고 있으니 가양심신이란 마음을 수양하기에 좋은 명당길지임을 뜻하는 말이다.
이종헌
승가사의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전각이며 부도며 탑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마는 그 중에서도 정조 때 승가사에 건립되어 양반 사대부로부터 일반 백성에까지 수많은 중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장수전(長壽殿)의 존재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장수전이란 무엇이었던가? 다시 첫머리에 인용한 다산의 시로 돌아가 보자.
다산이 승가사를 방문했을 당시 승가사에는 청나라 황제가 하사한 장수불이라는 옥불이 있었다. 장수전은 바로 그 옥불을 안치하기 위해 새로 지은 전각이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효의왕후와의 사이에 자손이 없었던 정조는 나인 출신인 의빈성씨와의 사이에서 마침내 문효세자를 얻는다.
1782년 9월의 일이니 정조의 나이 31세 때 일이다. 의빈성씨는 더구나 정조를 15년 동안이나 애타게 만든 여인이었으니 아들을 얻은 기쁨이야 오죽했겠는가? 정조는 문효세자가 태어난 지 만 22개월째인 1784년 7월 세자책례를 올리니 이는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의 세자책봉에 해당한다.
자손이 없던 조선왕 정조가 아들을 낳아 세자 책례를 올린다는 사실을 안 청나라 조정에서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일성록> 정조 8년 12월 24일 조에 정조와 영의정 서명선의 대화가 나온다.
내용인즉, 청나라에서 보내온 옥불의 처리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세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청나라 황실에서 보내온 옥불을 아무리 불교를 숭상하지 않는 나라라고 해도 거절하기는 힘들었을 터, 정조는 마침내 예전부터 왕실의 원찰로 명성이 높았으나 장희빈 때 무충의 옥으로 인하여 폐사가 되다시피 한 승가사를 중건하여 옥불을 안치하기로 한 것이다.
이 옥불은 오늘날의 미얀마 산으로 청나라 황제에게 조공된 것이었으며 청나라 황제는 이를 다시 문효세자를 위한 장수불로 하사한 것이다. 어쨌거나 폐사 직전의 승가사는 청나라 황실에서 하사한 옥불의 안치소로 으리으리하게 중건되었고, 여기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 바로 성월당대선사이다. 현재도 승가사에는 성월당대선사의 부도와 탑비가 남아있다.
아무튼 당시 승가사는 이 미얀마 산 옥불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785년 승가사를 방문하여 이 광경을 목격한 무명자 윤기(尹愭, 1741~1826)의 시를 보면 이 같은 사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장수전은 몇 백 척 높이의 층층대 위에 우뚝 솟아있으며 단청이 얼마나 화려한지 사람의 눈길을 빼앗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 내부에는 천정에 황금 구슬을 아로새겼고 한 쌍의 침향등과 술 장식을 드리웠으며 황제가 하사한 시가 적혀 있고 그 아래 유리로 된 상자 안에 옥불이 안치되어 있다고 했다. 구경꾼이 얼마나 많은지 흡사 시장바닥처럼 시끄럽다고도 했다.
1783년 이곳을 방문한 성균관 유생 이옥도 장수불에 관한 기록을 남긴 것을 보면 당시 장수전이 장안사녀의 기도처로서 또 유람지로서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청나라 황실의 기대와는 달리 문효세자는 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단명한 세자가 되고 말았으니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던가? 오늘날 장수전은 흔적도 없고 유리갑 속에 들어있다는 장수불 또한 그 행방이 묘연하다.
지난 봄날 승가사를 찾아 비구니 스님을 한 분 붙잡고 혹시 옥불의 정체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는 듯 모르는 듯 <승기사 연기사지> 책 한 권만을 건네 준 채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
승가사를 중창한 도원 스님이나 상륜 스님이 계시면 모를까 두 분 다 입적하신 지 오래니 옥불 친견의 기회는 애시 당초 틀렸다. 대신 오는 새해 아침에는 비봉에 올라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의 밤을 밝히는 민초들의 염원이나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국태민안을 빌어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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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황실이 보냈다는 장수불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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