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에서 바라본 동해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보면 문득 소주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이종헌
"기껏 스키장에 와서 바다 구경 가자는 사람이 어딨어요?" 툴툴거리는 아내와 아들 녀석을 이끌고 무작정 기차역으로 향했다. 스키장에서 차로 5분, 과거 1960, 1970년대 석탄 산업이 호황일 때 이곳 강원도 사북 고한 지역은 지나다니는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사람과 물자가 넘쳐 나는 고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기차역은 작고 한산하다. 역사 안에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앞에 두고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 부부와 우리 가족 그리고 대학생인듯 보이는 젊은 여성과 시골 노인 서넛이 전부다.
10시 53분 발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가 20분 연착된다는 안내방송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일본인 부부는 기차시간에 맞춰 플랫폼으로 향한다. 무료함도 달랠 겸 우리도 플랫폼으로 나가 기념사진을 몇 컷 찍고 나니 역사 한쪽에 기차를 개조해 만든 야생화와 탄광 사진 전시관이 눈에 들어온다.
석탄 산업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위축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미명 하에 건설된 카지노와 스키장이 지역주민들의 삶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아무쪼록 최근에 기획되고 있는 삼탄아트마인이나 야생화축제 같은, 폐광시설을 활용한 각종 행사들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와 더불어 과거 1960, 1970년대 산업화의 주역이면서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삼탄 광부들의 치열했던 삶 또한 새롭게 조명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래서인지 복수초, 산솜방망이, 며느리배꼽 등 함백산 자락의 야생화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20여 분을 연착한 기차가 우렁찬 기적을 울리며 역사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두어 칸 정도의 미니 열차를 생각했는데 객차는 다섯 량이 넘고 차 안에는 의외로 승객이 많다. 고한역을 출발한 기차는 한 때 우리나라 최장(最長) 터널이었다는 정암터널을 통과하여 해발 855미터 추전역을 지난다.
싸리밭골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추전역(杻田驛)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이지만 아쉽게도 무궁화호 열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다. 태백역으로 향하는 길에 창밖을 내다 보니 멀리 매봉산 풍력발전기가 산 능선을 타고 우뚝 솟아있다. 제 아무리 청정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라지만 해발 1300미터 고지의 백두대간에 줄지어 솟아있는 발전기는 잘 정비된 4대강(?)의 모습을 보는 듯 눈살이 찌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