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갑에서 제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당선인이 지난 4월 14일 오전 당선 후 첫 일정으로 안산 화랑유원지내 세월호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유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권우성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가 지난 4월 찍은 사진이다. 이 속에는 박주민 변호사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다음날의 모습이 담겨있다. '세월호 변호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곁에서 그를 축하해 주고 있는 사람들은 세월호 유족들이다.
이 사진이 독특한 것은, 사진을 찍는 장면을 찍고 있다는 점이다. 유족들은 사진 밖 오른 쪽의 다른 카메라를 주시하고 있다. 사람들을 측면에서 보여주는 탓에, 사진은 오히려 각각의 표정과 제스처를 더욱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이들은 분명히 웃고 있다.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V)'자를 그리며, 이를 드러낸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다. 일부는 카메라를 향해 과장되고 익살스러운 표정까지 짓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날까. 처음 사진을 본 지난 봄에도 그랬고, 새 봄을 앞둔 지금도 그렇다.
올해의 가장 슬픈 사진사진을 잘 보면, 박주민 옆에 앉아 손으로 눈을 가린 사람이 있다. 일그러진 입 모양을 보아 울고 있는 게 틀림 없다. 하지만 기쁨과 안도의 눈물일 것이다. 사진이 카메라에 담긴 뒤, 그도 곧 눈물을 훔치고 미소지었을 것이다.
이렇듯 기쁨으로 가득 찬 사진이 슬프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웃음이, 그 환한 표정이, 그 익살이 깊은 아픔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그날, 자식을 잃은 뒤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을 것이다. 자식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느다란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가족은 자식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봤을 것이고, 시신을 수습한 가족은 살아 뛰던 아이들이 왜 시신이 된 까닭을 알게 될 희망을 봤을 것이다. 물론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가녀린 희망이 그토록 큰 기쁨을 준 이유는, 그날 이전까지는 그 가녀린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라면,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애정을, 분노를, 아픔을, 슬픔을 비웃고, 조롱하고, 저주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만 잊을 때"라고 했다. "세금 도둑들"이라고 했다. 심지어 "돈좀 그만 밝히라"고 했다. 감싸 안고 함께 울어줘도 부족할 이들에게 침을 뱉고 발길질하는 이들이 우리 중에 있었다.
지난 여름 망원역 앞을 지나다가 서명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세월호 조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특별법을 개정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서명지를 받아들고 이름과 주소를 쓰자, 그중 한 명이 내게 노란 리본을 내밀었다. 나는 등을 돌려, 메고 있던 배낭에 달려 있는 리본을 보여줬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 어떤 분이 우리에게 '지겹다, 그만 하라'며 욕을 하고 갔어요.""가족이 억울하게 죽은 원인을 밝히고, 시민들에게 더 안전한 삶을 보장하자는 요구인데, 그 사람에게는 그저 '지겨운' 이야기로 들리는 모양이군요."그는 답 대신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흘리던 그 분은 유족이 아니었다. 그처럼 다른 이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던 눈물은 수백만 개의 촛불로 바뀌어 한국의 밤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족 일부는 배 속에 갇힌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고, 유족 모두가 자식의 억울한 죽음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 초에서 흐르는 촛농이 늘어날 수록 가족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줄어들 것이고, 반성을 모르는 어리석은 지도자와 측근의 '피눈물'은 늘어날 것이다.
가장 기쁜 인터뷰박근혜 대통령의 피눈물이 꼭 박근혜 개인의 피눈물이 돼야 하는 건 아니다. 걸맞지 않는 자리, 자격에 맞지 않는 자리, 정당하게 성취하지 않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은 되레 행복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애 티도 채 벗지 못한 딸을 '퍼스트레이디'라는 이름으로 내세워 권력유지의 소품으로 삼았다. 또래들과 깔깔대며 장난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갔어야 할 딸은, 자신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연설을 원로들 앞에서 읊는 처지가 됐다.
지난 4년간 여전히 자신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연설을 읊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그 자리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권력의 무대에 서서 남이 써 준 역할을 연기하는 것 이외에는 자신의 삶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이 이 지점에 이르자, 올해 가장 기쁘게 읽은 인터뷰가 떠올랐다. 경소영 시민기자가 쓴
"아버지 고승덕의 진실, 서울시민 위해 알려야 했다"는 기사다. 2014년 고승덕이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했을 때, 그의 딸 캔디 고는 아버지가 서울시 교육감이 돼서는 안 된다는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