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쉽지 않다.
오마이뉴스
가령, 초등학교 수학과에서 나오는 몇 가지 개념으로 생각해보자. 삼각형, 수직, 전개도, 다각형 같은 낱말을 보면 과연 한자를 알 때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석 삼+뿔 각+모양 형, 드리울 수+곧을 직, 펼 전+열 개+그림 도, 많을 다+뿔 각+모양 형'이니까 이럴 경우에는 낱말을 아는 데 도움이 되고 말고다.
물론 여기엔 '석/세, 뿔, 드리우다, 곧다, 펼치다, 열다, 그림…' 같은 우리 말을 먼저 알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한자말은 초등교과서 한자말 가운데 30%밖에 안된다. 나머지 70% 한자말은 대표 훈으로 톺아보면 오히려 더 헷갈리고 어리둥절해진다.
이를테면, '자연수(自然數), 소수(小數), 소수(素數), 대분수(帶分數), 약수(約數)' 같은 한자말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가. 한자를 안다고 해서 수학과에서 궁극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개념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아직 이런 말을 배우지 않은 아이 처지에서 한자 풀이에 기댄다면 다음과 같이 뜻을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자 + 저절로 연 + 수 수 → 스스로 수(?), 저절로 수(?) 작을 소 + 수 수 → 작은 수(?)흴 소 + 수 수 → 하얀 수(?) 띠 대 + 나눌 분 + 수 수 → 띠를 나누는 수(?)묶을 약 + 수 수 → 묶을 수(?), 묶는 수(?)
한자 훈을 안다고 해서 과연 교과에서 쓰는 뜻매김에 얼마나 더 가까워질수 있을까. 재미삼아 한번 견줘보자. 다음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그대로 옮겨왔다.
자연수(自然數) : 1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더하여 얻는 수를 통틀어 이르는 말. 1, 2, 3 따위이다. 소수(小數) : 0보다 크고 1보다 작은 실수. 0 다음에 점을 찍어 나타낸다.소수(素數) : 1과 그 수 자신 이외의 자연수로는 나눌 수 없는 자연수. 2, 3, 5, 7, 11 따위가 있다.대분수(帶分數) : 정수와 진분수의 합으로 이루어진 수약수(約數) : 어떤 정수를 나머지 없이 나눌 수 있는 정수를 원래의 수에 대하여 이르는 말.
오히려 한자를 이미 알고 있을 때 샛길로 빠지거나 그릇된 개념에 이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이들에게 무턱대고 한자를 많이 보여준다고 해서 낱말 뜻을 더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낱말은 풀이로 외우는 게 아니라 맥락에서 배우는 것과학 시간에 배우는 '소화'라는 말의 개념을 알려줄 요량으로 '消 사라질 소, 化 될 화' 하고 적어주었다고 하자. 한자 풀이만 보고 '우리 몸이 음식을 영양분으로 흡수하는 일' 또는 '배운 지식이나 기울을 제것으로 만듦을 빗대어 이르는 말'인 줄 알 수 있겠는가.
낱말을 안다는 건 말밑이나 사전 풀이를 외워서 아는 게 아니라 낱말이 쓰인 맥락 속에서 배우는 것이다. 똑같이 '소화'라고 쓰더라도, 아이들은 불이 일어나는 조건을 배우는 단원에서는 '불을 끈다'는 뜻으로, 우리 몸의 영양을 배우는 단원에서는 '영양분을 흡수하는 일'로 자연스럽게 알아간다.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표기가 '어휘 교육'이니 '인성 교육', '인문학 강화' 같은 아름다운 구실을 붙였지만 학부모 불안감과 이기심을 부추켜 제 뱃속을 채울 욕심만 가득할 뿐이다. 교육이라면 마땅히 아이를 먼저 생각해야 하건만 정작 한자를 배울 아이를 배려하는 마음은 병아리눈곱만큼도 없다. 발달 단계로 보면 초등교육은 낱말을 뜻 단위로 따로따로 쪼개고 외우는 분석 방법보다 맥락 속에서 절로 배우는 통합 방법으로 이뤄져야 옳다.
지난 11월 24일 헌법재판소는 공문서를 한글로 적도록 한 '국어기본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동시에 초·중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또한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입만 열면 교육부는 '꿈을 키울 수 있는 교육, 끼를 펼칠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묻고 싶다. 꿈과 끼는 과연 누구의 '꿈'이고 누구의 '끼'인가. 교육부가 과연 가치롭게 지켜야 할 교육은 과연 무엇인가. 아이들을 '교육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아 한자 사교육과 한자 기득권 세력을 편들고, 저들의 꿈을 키우고 끼를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가. 교육부는 더 이상 시민을 속이지 말고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표기를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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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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