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미래유산이 된 형제 대장간.
김종성
화덕 안에서 꺼낸 새빨간 쇠를 꺼내 받침대인 모루 위에 올리는 사람은 동생 대장장이, 쇠망치로 힘차게 두드리며 모양을 잡는 건 세 살 많은 형 대장장이다. 쇠를 두드리며 모양을 만드는 단조작업엔 노련함과 정교함이 필요해서다.
참고로 동생은 20여 년, 형은 무려 50년 경력의 대장장이다. 달인 혹은 장인의 모습을 떠올리기 좋은 장면이라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그런 생각은 나만 한 게 아니었나보다. 멀리 대전 MBC에서 찾아와 촬영이 한창이었다. 형제 대장장이는 방송 촬영이 익숙한 듯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제 일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는커녕 세상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평생을 불과 쇠를 다루며 묵묵히 살아왔을 환갑의 대장장이 아저씨. 타인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일생을 정직하게 살아온 듬직한 고목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 몸을 쓰며 먹고 살아야 하는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남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장인의 풍모가 느껴졌다. 오랜 끈기와 노력으로 서울미래유산이라는 어엿한 간판도 얻었다.
나이 지긋한 형제 대장장이를 보니 문득, 김훈 작가의 소설 <현의 노래>에 나왔던 대장장이 '야로'가 떠올랐다. 쇠가 많이 나서 철의 왕국으로 불렸던 가야시대. 농사(농기구)와 국방(무기)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다보니, 왕과 독대를 할 정도로 중요한 일꾼이었던 대장장이는 천직이란 말이 어울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직업이 아닐까 싶다. 옛날엔 점잖게 야장(冶匠)이라고도 불렀다는데 대장장이라는 말이 훨씬 친근하다.
알고 보니 기차역 앞에 대장간이 자리 잡은 이유가 있었다. 망치질 소리 시끄러운 대장간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게들과 떨어져 있어야 해서였다고. 따로 대문이 없는 대장간 입구에는 호미, 낫, 괭이, 갈고리 등 수백 가지 도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안쪽에는 조그마한 화로가 불꽃을 활활 일으키며 대장간을 후끈하게 달구고 있었다. 요즘같이 추운 날에도 대문이 필요 없는 이유다. 지긋지긋했던 지난 여름날엔 EBS방송에 나오는 극한직업의 현장이 따로 없었겠지만, 겨울철엔 찜찔방의 불가마 앞을 연상케 하는 뜨끈뜨끈한 공간으로 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