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소망 담은 '촛불'24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즉각퇴진 9차 범국민행동’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과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을 모아두고 있다.
권우성
정치권에서 한창 논란인 개헌을 생각해보자. 지금 정국에서 씨앗을 심으면 그 열매는 귤이 될 것인가. 탱자가 될 것인가.
87년 6월항쟁은 개헌 자체가 목적이었다. 구호도 '호헌철폐 독재 타도'였다. 체육관 선거를 혁파하고 국민들이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뽑자는 직선제 쟁취가 항쟁의 목표였다.
이번 촛불 혁명은 어떤가. 개헌하자는 혁명인가. 수차례 있었던 주말집회에서 단 한 번이라도 개헌하자는 구호가 나온 적이 있던가. '당장 개헌'을 주장하는 분들은 돌아오는 주말집회에 나가서 '지금 당장 개헌하라'는 구호를 직접 외쳐보시라.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구호를 외치는 즉시 시민들이 '지금 뭣이 중헌지'를 잘 알려줄 것이다.
개헌이슈를 처음 제기한 건 다음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다. 최순실이 숨겨진 제2의 대통령이었다는 게 들통나고 나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난데없이 국회에 와서 던진 게 개헌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땐 다들 박 대통령이 개헌을 방패로 내세워 궁지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즉각적인 개헌 논의가 불붙지 않았던 건 그런 대통령의 꼼수를 모두가 다 알았기 때문이다.
개헌 논의가 나라를 망친 세력의 유일한 탈출구라는 건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꼼수를 던지던 때와 달리 지금은 일부 야권 세력이 가담함으로써 탄핵의 와중에 정치권의 돌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탄핵의 완결까지 명확하게 견지해야 할 전선을 흩뜨리는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권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부역세력'에서 '개헌세력'으로 신분세탁을 하려는 비박계이고 또 하나는 개헌을 통해 권력분산이 아닌 권력 나눠먹기를 하고 싶은 일부 야권세력이다.
개헌 이슈는 박 대통령과 전직 부역 세력에겐 꽃놀이패다. 실제 개헌이 되고 좋지만 논의만 거세게 불붙더라도 그들의 죄과가 희석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대선전 개헌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들이 내심으로 원하는 건 '개헌' 자체보다는 '개헌의 논의'가 부각되고 가열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지만 개헌 깃발을 치켜들면서 관심을 개헌으로 쏠리게 하고 그것으로 '박근혜를 만든 세력', '박근혜의 부역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개헌세력'으로 그들은 신분세탁을 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 '친일 부역세력'이 해방과 동시에 '반공세력'으로 표변해 온전히 살아남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른바 '개혁보수신당'를 내세우며 친박과 차별화를 하고 있지만 비박계를 이끌고 있는 김무성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북한에 팔았다며 국민들을 속인 종북몰이의 대명사다. 또 딸의 교수임용 청탁, 사위의 마약설 등 각종 추문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시절 그의 비서실장이었다. 과거 황교안 총리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사유가 쏟아졌음에도 이를 막고 청문회 통과를 주도해 현재의 황교안 총리를 만든 새누리당의 전 원내대표다. 사드 배치에 앞장선 강경파이기도 하다. 이들은 사람도 과거도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비박계는 개헌을 하지 않으면 최순실 사태가 또 발생할 것이라면서 국정농단 사태의 근본 원인을 '박근혜'에서 '헌법'으로 옮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헌법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다. 헌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최순실'에 의한 통치를 함으로써 박 대통령이 헌법을 무력화하고 파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