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가 음주운전 신고했어요, 그런데..."

전국대리기사협회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등록 2016.12.26 11:40수정 2016.12.2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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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기사는 서비스종사자 아닌가요?..."
"... 선생님, 대리기사는 술 취한 사람들을 위해 서비스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손님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운행을 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로 적잖은 상담전화들이 걸려옵니다. 동료기사들의 억울한 하소연 전화는 물론, 소비자들의 상담, 심지어는 대리운전 주문을 하는 전화도 매일매일 적잖이 걸려옵니다.

화가 잔뜩 나서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대리기사가 만취한 자신을 그대로 놔둔 채 음주운전을 유도한 후 신고해서 면허취소를 당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나중 블랙박스로 확인해보니, 차를 세운 채 내린 대리기사가 주변에 숨어서 자신이 차를 몰고가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경찰 신고를 했다며, 분을 참지 못합니다.

" 손님, 혹시 대리기사에게 요금은 주셨나요? "
" 글쎄... 잔뜩 취해서... 잘 모르겠는데요..."
"협회라고해서 일방적으로 대리기사편을 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두번이나 불렀다가 두번 다 다툼이 있었다면서요?  대리기사를 불렀으면 요금을 주셔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대리기사가 손님에게 함부로 하고 음주운전 하게해서 면허취소시키는 게 잘한 짓이요?"

듣고보니 딱합니다. 술취해서 진상짓을 한 손님, 그렇다고 운행을 멈춘 채 보복을 한 대리기사, 어쨌건 불행한 사태입니다. 대리기사들은 대체로 취객을 상대하다보니, 폭행이나 폭언, 사고의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습니다.

현장에서 손님과 다툼이 생기면 대리기사들도 적잖이 피해를 봅니다. 힘들게 손님과 만나 운행 하다 뺏긴 시간, 다툼하느라 뺏긴 시간이 아깝습니다. 요금 받기도 애초에 포기해야 합니다. 게다가 폭력사태도 적잖게 벌어집니다. 업체에서 이 사실을 알면 앞뒤 안 가리고 대리기사를 탓하며 배차제한을 걸기 일쑤입니다. '어떠한 법이나 제도 없이 고된 노동과 형편 없는 수입'. 대리기사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비슷한 처지에서 어설픈 갑질을... 슬프다

대리기사가 달리던 차량을 멈추고 운행을 중지하는 경우는 대부분 진상 손님의 강요나 위협, 횡포로 인해 긴급하게 피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다보니 분노한 대리기사의 보복행위가 벌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한편, 그 만취상태의 손님이 음주운전을 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이 복수심 때문이건 상당한 염려 때문이건, 신고를 하여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분과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랴, 한편으론 위로를 하고 한편으론 이해시키랴 분주한 전화통화는 끝날 줄 모릅니다. 듣다보니 정말 딱하긴 합니다.

돈 1~2만 원 들여 대리기사를 무슨 수행기사처럼 취급하고 싶어하는 이 분, 그런데 알고보니 수행기사를 하면서 운전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이더군요. 아마 당한 만큼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었던가 봅니다. 비슷한 처지에서 어설픈 갑질을 하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면허취소를 당할 처지라 하니, 당장 생계가 막막해져 버렸습니다. 만취 중 진상짓을 한 것치곤 너무 가혹한 결과를 맞게되니 측은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함참 동안의 통화가 이어졌건만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분노로 시작된 전화가 다툼과 하소연, 언쟁과 이해 속에 끝나갑니다. 행정소송이라도 하고 싶다는 이 분, 협회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해드리고 싶습니다. 당장 다음달부터 운전을 못하게 되고 밥줄이 잘리게 될 처지라 하니, 탄원서라도 작성해서 드리고 싶습니다. 

연말입니다. 일년 중 가장 많은 대리운전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대리기사와 주문고객, 이들의 운행길이 이해와 배려 속에 안전하고 편안한 동반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종용기자는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의 회장입니다.
#대리기사 #음주운전신고 #대리운전업법 #진상손 #전국대리기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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