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울산바위를 줄여 놓은 듯한 금정산 부채바위
배석근
성이야 어떻든지 그 성을 쌓는 백성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고 노동은 고됐을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늠름하게 서 있는 성을 볼 때마다 그 성을 쌓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고생했을 백성들의 모습을 그려 보곤 한다.
남자들은 전쟁에 나가서 소모품처럼 사라지기도 했지만 성을 쌓는 노역에 동원되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의 세월을 몇 달 혹은 몇 년씩 보내야 했을 것이다.
커다란 바위에서 성을 쌓기에 적당한 크기로 돌을 잘라내고 죽을힘을 다해 그 돌을 옮기고 그 다음에는 돌을 들어 올려 성을 쌓고… 그러다가 구르는 바위에 깔려 죽고 성벽 위에서 떨어져 죽고 돌덩이에 발을 찍혀 불구가 되고…….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에 있는 <금정산성부설비>에는 "1808년 초봄에 동래부사 오한원의 지휘 하에 기둥과 들보를 100리 밖에서 옮겨 오고, 벼랑 끝에서 험준한 바위를 깎아내 메고 끌어당기는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 들어서 일제히 힘을 쓰니 149일 만에 북문의 초루가 완성됐다"고 쓰여 있다.(안내판 내용)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들여다보니 너무 힘들어 우는 이, 다쳐서 다리를 절룩거리는 이,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이, 배고파서 넋이 나간 이들뿐이다. 그저 안타깝고 깊은 한숨만 나온다.
내가 20세기에 태어나서 정말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은 성을 쌓는 노역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그 옛날 이 땅에 태어나 성 쌓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면 나는 추위에 얼어 죽거나 돌에 깔려 죽거나 아니면 일 못한다고 맞아죽었을 것 같다.